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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10.30 15:23:55
  • 최종수정2024.10.30 15:23:55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경부고속도를 달리다 보면 '대전IC~옥천IC~영동IC~황간IC~추풍령IC'을 거쳐 김천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황간이 영동보다 남쪽에 있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영동읍이 황간면소재지보다 남쪽에 위치하는 것을 알고 놀라곤 한다.

황간면은 지금은 영동군에 속해 있지만 옛날에는 영동군과 대등한 '황간현, 황간군'이었고, 반야사, 월류봉, 노근리 평화공원 등 볼거리도 많이 있다. 고려시대까지는 경상도에 속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1413년(태종 13)에 충청도로 이관해 청주목에 속하게 하였다. 1593년(선조 26) 현감 박몽열(朴夢說) 등이 진주 왜적과의 싸움에 나가 한 사람도 살아오지 못했으므로, 황간현을 없애고 청산현에 부속시켰다가 1621년(광해군 13)에 다시 독립시켰으며 1895년 공주부 황간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896년 충청북도 황간군이 되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황간 지역을 '소라현(召羅縣)'이라 했다는데 '소라(召羅)'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소라라고 불렀을까.

민간어원설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 올갱이(다슬기)가 많이 나서 소라라고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아마도 음의 유사성에 맞추어 만들어낸 민간어원설로 보인다.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 '소라리'라는 지명은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지만 전남 여수시 소라면 '소라 포구'와 인천시 남동구의 '소래 포구'와 같이 포구의 지명을 '소라'라고 한 것은 형태가 소라(대야)처럼 둥글게 육지로 들어와 있으므로 배가 드나드는 포구의 적지이므로 만들어진 지명임을 알 수가 있다.

'소라'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사어(死語)로서 원래 '대야(盆)'의 뜻을 지닌 말이었다. 평안북도 방언에서는 '세수 대야'를 '소래기'라 부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12세기에 송(宋)나라의 손목(孫穆)이 쓴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盆曰大耶(큰 그릇은 대야라 한다)'라 했으며 1446년의 <훈민정음 해례(訓民正音 解例)>에 '다야(匣)'라 표기한 것을 보면 '다라 > 다야 > 대야'의 변화를 추정해 볼 수가 있다. 어패류인 '소라' 이름도 예전에는 소라 껍데기를 술잔, 물잔으로 사용하였기에 그릇의 형태이므로 '소라'라고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15세기에 통사(通事)들이 사용한 한·한대역(韓·漢對譯) 어휘집이며 언해서(諺解書)인 <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에 '동분(銅盆)'을 '놋소라'라고 한 것을 보면 '소라'와 '다야'가 혼용되다가 후에 '소라'는 소멸되고 '다야'가 '대야'로 변화되어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찍 소멸된 '소라'는 지명에 사용된 예는 적으나 '대야'가 쓰인 지명은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대야리'라는 지명은 음성군 삼성면과 보은군 보은읍의 대야리를 비롯하여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충남 예산군 대흥면, 전남 보성군 보성읍, 전남 완도군 완도읍, 경북 김천시 부항면, 경남 거창군 남하면, 경북 경주시 안강읍, 전북 익산시 함열읍 등 여러 지역에서 쓰이고 있다.

음성군 삼성면 대야리는 한자로 대야리(大也里)라 표기하고 있으며, 지형이 대야처럼 생겨서 대야곡(大也谷)이라 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또한 다른 지역의 '대야리'도 한자로 '대야리(大野里)'라 표기하지 않고 '대야리(大也里)'라 표기한 것은 '대야'가 의미를 한자로 표기한 한자어가 아니고 순우리말의 소리를 한자로 표기한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면 '대야리'라는 지명에서 '대(大)'는 '크다'는 의미가 아니라 산으로 둘러싸여 그릇처럼 움푹 들어간 지형을 가리키는 '다라, 다야'에서 온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황간의 옛 이름인 소라의 의미는 백화산, 황악산, 민주지산 등의 줄기로 둘러싸여 그릇처럼 움푹 들어간 지형을 가리키는 말로 본다면 지명의 명명 유연성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황간에 소라라는 옛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은 옛 우리말을 보존하고 있는 귀한 자료일 뿐 아니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유서 깊은 고을임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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