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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지명산책 - 길동과 계산(稽山)의 지명 유래

  • 웹출고시간2024.05.15 14:23:54
  • 최종수정2024.05.15 14:23:54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영동(永同)은 신라 초까지 길동(吉同)으로 불리다가 신라 35대 경덕왕(757년) 때에 영동(永同)으로 개칭하였다. 그때까지의 지명은 자연 지명의 음을 이두식으로 표기하였으므로 한자로 표기되었지만 순우리말로 된 자연 지명으로 읽게 되므로 중국식 한자 표기와는 달랐다. 그래서 경덕왕은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모든 제도의 한화(漢化) 정책에 따라 지명도 중국식 한자로 일대 정비를 하면서 '길다'는 의미를 지닌 '영(永)'으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길동'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지역에서 '길동'이라는 지명을 찾아보면 서울특별시 강동구 길동(吉洞)을 들 수가 있다. 마을로부터 강이 멀리 떨어져 있고 주위에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물난리 또는 산사태 등의 천재지변이 없는 살기 좋은 길한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이것은 유사한 음을 가지고 만들어낸 언어유희로 보이며, 그보다는 마을 모양이 나뭇가지처럼 길다 하여 붙은 '기리울'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유래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구한말 때까지는 '기리울, 기리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한자로 '길리(吉里)'라 표기하면서 산사태도 없는 길한 동네라 해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지명에서 '긴, 진, 길, 질, 기름, 지름'이라는 지명 요소는 모두 '길다(長)'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진골'이라는 지명이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상리를 비롯하여 상당구 가덕면 내암리, 미원면 계원리, 미원면 기암리,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 증평군 증평읍 덕상리, 보은군 수한면 율산리, 보은읍 산성리, 괴산군 청안면 문당리, 청천면 평단리, 음성군 대소면 수태리, 원남면 보천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영동(永同)의 옛 이름인 '길동(吉同)'도 '긴 골짜기 혹은 길게 형성된 마을'의 의미를 가진 '진골(긴골), 기리울'에서 변이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영동(永同)이라는 이름은 고려 성종 14년(995년)에 계산(稽山) 또는 계주(稽州)라 개칭하였다고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계산(稽山), 계주(稽州)'에서 '산(山), 주(州)는 지명의 후부 요소로서 행정적인 구역 단위의 명칭이라고 본다면 '계(稽)'라는 지명 요소는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을까. '계산(稽山)'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영동읍 계산리라는 지명으로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도 그 유래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그 뿌리와 진화 과정을 찾아보고자 한다.

'길동'이라는 지명은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하면서 경덕왕 때에 '영동'으로 바꾸었으나 이는 행정명일 뿐이고 지역의 주민들은 수천년간 사용한 '긴골, 진골, 기리울'이라는 자연 지명을 여전히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동으로 개칭한 지 200여년 후인 고려 성종 때 개칭한 '계산(稽山)'이라는 지명의 뿌리도 '긴골, 진골, 기리울'에 두어야 할 것이다.

전남 완도군 소안면 진산리의 소안도는 주위의 산이 매우 아름다워 진산(珍山)이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지형이 남쪽으로 길게 뻗은 장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길게 뻗은 산'이라는 의미의 '긴산'이 '진산'으로 변이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의 지산리에는 주산에서 길게 벋어내려온 산줄기에 고분이 산재해 있어 '진산(긴산)'이 변이되어 '지산'이 된 것으로 추정이 되며 제천시 청풍면 계산리는 '긴산골'이라는 의미의 지산골이 '제장골, 계장골, 계산리'로 변이된 것으로 보아 '진산'이라는 지명은 '기산, 지산, 제산, 계산' 등으로 다양하게 변이되어 왔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계산이라는 지명이 '진골, 기리울, 길동'이라는 영동의 옛 자연 지명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지명이라고 본다면 모든 의혹이 속 시원히 풀린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서울의 길동에서는 기리울빛축제를 비롯하여 기리울이라는 이름을 각종 기관이나 상점의 이름에 사용할 정도로 옛 전통을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충북의 영동(永同)에서도 우리 조상들의 꿈과 이상이 서려 있는 옛 이름을 찾아 전통을 되살리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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