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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

시사평론가·전 언론인

그저께인 10월 11일은 음력으로 9월 16일이었다. 바로 명량해전 425주년일이다. 1597년 음력 9월 16일 이른 아침, 해남 전라우수영과 진도 사이 좁은 바다 울돌목(명량)에서 조선 수군 전함 판옥선 13척과 왜 수군 전함 세키부네 133척이 격돌했다. 전함과 병력 숫자를 비교하면 도저히 싸움이 성립될 수 없는 조선 수군의 절대 열세였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완벽한 승리를 거둔 명량해전이다. 명량해전을 다시 돌아본다.

*** 이순신 장군의 대체불가 리더십

명량해전의 승리 요인을 분석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대체로 이순신 장군의 대체불가 리더십, 빠른 물살과 좁은 물목을 이용한 탁월한 병법, 판옥선의 우수성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하루 전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그 유명한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강조하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체계를 심어준다. 실제로 명량해전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은 지휘선을 타고 일자진의 맨 앞장에 홀로 서서 적선 가운데로 들어가 싸우며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보인다. 전투 초반에는 조선 수군들이 적선의 위용에 놀라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이 질려 뒤로 물러나 멀리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형세를 재빨리 파악하고 부하 장수들의 심리를 통찰한 이순신 장군의 엄중한 독전에 사기를 회복한 조선 수군이 결사적으로 싸워 적선을 섬멸한다.

명량해전에서 빠른 물살과 좁은 해협을 이용한 이순신 장군의 치밀한 전술은 가히 백미 중의 백미라 할만하다. 장군은 명량해전 전날 장수들에게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 한 사내가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라며 명량의 좁은 물목과 빠른 물살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적절히 활용하는 전술을 구상했다. 장군의 일기에도 133척의 왜 함선이 명량의 물목을 통과해 그 중의 31척이 조선 수군 13척과 해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온다. 왜적의 함선이 아무리 많아도 좁은 해협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왜선이 한꺼번에 조선 수군과 맞붙을 수 없는 것이다. 전투결과 조선 함선 13척은 온전히 보존된 반면 일본 함선 31척은 모조리 격파분멸 되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의 병법에 통달한 완벽한 전술과 이 전술을 목숨 걸고 수행해 낸 일당천의 조선 수군 전투역량이 거둔 기적의 승리다.

장군의 리더십이 매우 뛰어나고 지형적 조건을 기가 막히도록 활용한 전술이더라도 명량해전처럼 절대 중과부적인 전장에서 함선의 전투력마저 뒤지거나 비슷했다면 승리하지 못했을 수 있다. 왜적의 해전 주력선인 세키부네는 삼나무로 건조된 첨저선(배 바닥이 V자형)으로 가볍고 직진 기동 속력은 빠르나 선체가 작고 충격에 약하며 화포 발사 시 반동 흡수가 불리한 단점이 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소나무로 건조된 평저선(배 바닥이 평평함)으로 무겁고 속력은 느리나 선회 기동이 자유롭고 선체가 크고 높으며 화포 발사 시 반동 흡수가 용이한 장점이 있다.

'등선백병전'을 주특기로 삼는 왜적은 조선 수군의 판옥선에 기어 올라가 근접 거리에서 백병전을 벌여야 승산이 있는데 선체가 작고 낮은 세키부네에서 덩치 큰 판옥선으로 올라가지를 못하는 치명적 맹점이 있다. 게다가 왜적은 조총으로 무장했는데 당시 조총의 사정거리가 200m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바다 위에 멀리 떨어진 함선에는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조선 수군은 사정거리가 1㎞ 이상 되는 지자총통, 현자총통 등의 화포를 발사해 적선을 당파시키고 전투 막바지에는 화살을 이용하여 왜적을 사살하며 화공전술로 왜선을 불태워 분멸시키는 '당파분멸전' 구사가 가능했다.

*** 지역민들 해상의병 활약

역사문헌 기록과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명량대첩을 이루는데 반드시 평가 받아야 하는 것이 지역민들의 눈물겨운 희생과 활약이다. 지역민들은 13척의 함선에 승선한 조선 수군들에게 의복과 군량을 지급했고 솜이불 100여 개를 거둬 물에 담가 조선 수군의 전선에 걸어서 왜적이 쏜 탄환이 뚫고 나오지 못하게 막아 줬다. 명량해전 당일에는 해상의병이라 불리는 지역민들이 향선 100여 척을 이끌고 조선 수군의 후방 바다에 배를 벌려 늘어놓아 조선 군선처럼 보이게 꾸미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해전은 불세출의 성웅 이순신 장군과 휘하 장수들, 화포 다루는 방포장들, 활 쏘는 사부들, 노 젓는 격군들, 그리고 이름 없는 해상의병들이 하나같이 자신을 던져 최악의 조건에서 최고의 승리를 만들어 낸 대첩인 것이다.

오늘은 음력 9월 18일, 425년전 이날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은 어외도(전남 신안군 지도읍 어의도)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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