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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

시사평론가

법치국가라 말하기 부끄럽다. 입법부·사법부·행정부가 몽땅 불신 대상이다.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국가기관, 헌법기관이 없다. 법기술 전성시대가 법치를 농락한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은 군부독재 시대로 착각한 듯 비상계엄이라는 희대의 사고를 저질러 입법부로부터 탄핵소추 당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절차를 시작했는데 대통령, 국회, 헌재가 정도를 걷지 않고 각자 편법과 꼼수를 부려 지탄 받는다.

***당당하지 못한 대통령

가장 큰 비판은 대통령답지 못한 처신이다. 대통령은 헌재가 수차례 보낸 송달서류를 수령하지 않는 등 재판지연 전략을 공공연히 구사해 구차스런 모습을 보여줬다. 실패 할 수밖에 없는 비상계엄이었지만 헌재 심판 절차에 당당하게 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당당하지 못한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어찌 강변하겠는가.

공수처에는 내란 혐의 수사권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의 주장을 감안하더라도 헌재의 탄핵심리 절차에 시간을 끌어본들 떳떳하지 않게 비칠 뿐이다. 탄핵심판을 받는 대통령이 헌법정신을 중심으로 법리논쟁을 벌여 이기든 지든 결과에 승복하는 걸 국민이 원한다. 헌재의 절차에 잔기술로 대응하는 대통령은 국민에게 거부감만 준다.

여야 정당과 국회의 낯 뜨거운 술수 경쟁은 탄핵 정국을 맞아 극에 달하는 중이다.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인인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단이 "탄핵소추안에서 '형법상 내란죄'부분을 철회하겠다"고 밝혀 논란에 불을 붙였다. 대통령 측은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한다는 것은 80%에 해당하는 탄핵소추서의 내용이 철회되는 것이므로 각하돼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은 '형법상 내란죄' 부분이 빠지면 탄핵소추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반발했다. 파장이 커지자 국회 탄핵소추단 법률대리인단은 "12·3 비상계엄의 내란행위 자체는 헌법재판소에서 모두 판단 받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기술자들이 법률 용어를 아무리 이리저리 굴려 표현해도 본질은 이재명 대표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대선을 치를 수 있도록 탄핵심판을 속도전으로 끝내려는 계산이다.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없는 비상계엄이었다 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빨리 끝내는데 초점을 맞출 일인가.

헌법재판소는 탄핵 청구인과 피청구인, 그리고 국민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충분한 심리 절차를 밟아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다섯 차례 변론기일을 일괄지정 하면서 피청구인(대통령) 측의 의견을 듣지 않는 등 신속한 심리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의구심을 받고 있다. 고도의 공정성이 생명인 헌재가 비판을 자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통령을 내란혐의로 수사하겠다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공수처의 행태는 수준 미달이다. 내란죄 성립 여하는 수사와 재판을 거쳐 가려질 것이나 현행법에 의하면 내란죄 수사권이 경찰에만 있다. 내란죄 수사권한도 없는 공수처가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고는 사전 협의도 없이 경찰에 영장 집행을 떠넘겼다가 경찰의 거부로 무산됐다. 내란죄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 수사 주체가 되면 대통령 경호처의 영장집행 거부에 국민적 질타가 이어질 것이다. 왜 수사권도, 능력도, 의지도 없고 법규도 모르는 공수처가 굳이 나서 혼선을 거듭하는가.

***법치 농락하는 꼼수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 헌재 탄핵심판, 내란 혐의 수사 등 일련의 과정에서 당사자와 기관들이 합법을 빙자한 법기술로 혼란한 시국을 부채질 한다. 법기술에 의해 법치가 도전받는 혼돈의 시대다. 무엇을 위한 법기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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