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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

시사평론가

지난 5일 아르헨티나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스타디움. 2023 FIFA(국제축구연맹) U-20(20세 이하) 월드컵 8강전을 승리로 이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가 태극기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한 사진이 각 언론에 보도됐다. 사진에는 특이한 장면이 있었다.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저마다 웃는 표정으로 찍은 사진에는 한 선수가 등번호 18번이 보이는 유니폼을 펼쳐 들고 있다. 등번호 18번은 최전방 공격수 박승호 선수인데 예선 리그 온두라스전에서 한국의 동점골을 넣었으나 발목 골절 부상으로 경기를 더 뛸 수 없어 조기 귀국한 선수다.

*** 원 팀 정신이 쓰는 신화

아프리카의 독수리라 불리는 강팀 나이지리아를 꺾고 4강에 오른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승리의 짜릿한 감동을 만끽하는 순간에도 부상 때문에 경기를 함께 뛰지 못하고, 환호하는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동료 선수를 기억하는 그 장면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전에 벌어졌던 에콰도르와의 16강전에서 승리한 선수들이 18번 등번호 유니폼을 들어 올리며 운동장을 돌고 기념촬영을 할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으나 4강에 진출하고 보니 의미하는 바가 크게 보였다. 바로 이런 원 팀 정신이 유명세를 가진 스타 선수도 없고, 소속팀의 주전급 선수도 거의 없지만 U-20 월드컵이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축구는 좋아하지만 국가대표팀 경기 정도를 빼면 축구 관련 뉴스나 배경 소식 등을 평소에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번 U-20 대표팀이 '골짜기 세대'라 불릴 만큼 스타플레이어나 스타 감독이 없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황금 세대'의 반대말이며 아래로 푹 파여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골짜기 세대'라는 표현도 처음 듣는 말이다. 이런 선수들을 이끌고 세계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FIFA 주관 2개 대회 연속 4강 신화를 쓴 김은중 감독의 리더십이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김은중 감독은 4강 진출 확정 후 인터뷰에서 "조별 리그에서 광탈(광속 탈락)할 거란 얘기가 어린 선수들 귀에 들어가는 게 가장 마음 아팠다" "월드컵에 나가면서도 주목을 받기보다는 우려가 많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우려를 기대의 응원으로 바꿀 수 있게 묵묵히 따라와 준 선수들이 고맙다"며 울컥했다. 선수들은 "감독님이 우리를 믿고, 우리도 감독님을 믿어 이뤄낸 성과"라고 말한다. 이번 대회 참가 전 대체적인 평가는 잘하면 16강, 아주 잘하면 8강 정도였다고 하니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걸출한 스타급 선수는 없어도 여기에 오기까지는 선수들의 잠재력을 믿고 피지컬과 멀티플레이에 집중하는 등 체계적인 훈련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구축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선수들의 경기 체력을 끌어올리면서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완성하고 이번 대회 최고의 무기로 빛을 본 세트피스도 철저히 준비한 결과라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실망의 크기만큼 욕도 많이 먹는 게 선수와 감독인데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던 팀이 오히려 대박을 터트리니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고 더욱 값지다고 본다. 모든 스포츠 분야가 그렇듯이 이길만한 팀이나 선수가 이겨도 박수 받지만 뒤처지고 부족한 면이 있는 팀과 선수가 예상을 깨고 승리를 쟁취할 때가 훨씬 감동이 크기 마련이다. 이러한 면에서 U-20 대표팀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있는 중이다. 잘난 사람보다는 평범하거나 잘 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뛰어나지 못하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도 누구나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작은 잠재력들이 모여 하나의 물결을 이룰 때 거대한 힘으로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걸 증명해 준다고 믿고 싶다.

***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

U-20 대회 4강전은 9일 오전 6시 이탈리아와 결승 진출을 놓고 맞붙게 됐는데 이 역시 치열한 접전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이탈리아는 우승 후보일 뿐 아니라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조별 예선전에서 또 다른 후승 후보 프랑스를 2대1로 꺾은 전력이 있고, 다른 조 예선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나이지리아를 8강전에서 무너트린 상승세를 타고 있어 해 볼만 하다는 분석도 많다.

전통의 축구강국 이탈리아를 상대로 깨끗하게 이겨서 대망의 결승전에 올라가고 마침내 우승컵을 번쩍 들어 올려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축구공은 둥글고 실력 외에 경기운과 여러 변수가 많이 작용하므로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앞으로 남아 있는 승부와는 별개로 지금까지 우리 대표팀이 보여준 신화 창조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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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기업 돋보기 5.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국내 시장에 '콜라겐'이라는 이름 조차 생소하던 시절 장부식(60)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콜라겐에 푹 빠져버렸다. 장 대표가 처음 콜라겐을 접하게 된 건 첫 직장이었던 경기화학의 신사업 파견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생소한 사업분야였던 만큼 일본의 선진기업에 방문하게 된 장 대표는 콜라겐 제조과정을 보고 '푹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해당 분야의 첨단 기술이자 생명공학이 접목된 콜라겐 기술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였다. 회사에 기술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일주일에 5건 이상 작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장 대표는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으로 선진 견학을 갔다. 정작 기술 유출을 우려해 공장 견학만 하루에 한 번 시켜주고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견학 때 눈으로 감각적인 치수로 재고 기억해 화장실에 앉아서 그 기억을 다시 복기했다"며 "나갈 때 짐 검사로 뺏길까봐 원문을 모두 쪼개서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가져온 만큼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견학 다녀온 지 2~3개월만에 기존 한 달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