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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08.03 17:02:48
  • 최종수정2022.08.03 17:02:48

이정균

시사평론가·전 언론인

충북도민, 특히 청주시민은 철도에 한이 맺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KTX오송역이 생기기 전에는 철도 없는 설움이 깊었다. 충북의 도청 소재지이며 천년의 역사가 넘는 고도 청주에서 서울·부산 가는 철도가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 제1의 도시 서울로부터 단절돼 있다는 뜻이요, 제2의 도시권 부·울·경으로부터도 격리돼 있다는 의미다. 청주에서 서울 가는 유일한 대중교통은 고속버스였다. 청주의 변두리에 청주역이 있긴 하나 경부선이 아닌 충북선의 일부여서 기능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경부선 열차를 이용하려면 조치원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을 넘어 철도를 유치하지 못한 선대들에 대한 야속함이 폭발하기 일쑤였다.
 
*** 철도 없는 100년 설움
 
구한말인 1898년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조선에 압력을 넣어 '경부철도계약'을 체결하고 경부선 철도 건설을 추진했다. 당초 계획된 노선은 서울~용인~안성~청주~상주~대구~부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성, 청주, 상주 지역의 유림과 유지들이 "철마(鐵馬)가 들어오면 망한다"며 반대하여 서울~평택~천안~조치원~대전~김천~구미~대구~부산 구간으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안성, 청주, 상주 지역에서 실제로 얼마나 반대를 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른 이야기로는 경부선 철도를 건설하려면 소백산맥 구간을 지나야 하는데 가장 낮은 지형이 추풍령이어서 시간과 비용에 쫒긴 일본이 현재의 노선으로 결정했다고도 한다. 어느 설이 맞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철도는 개통됐고 철마가 피해간 안성, 청주, 상주의 발전은 더딘 반면 철도 교통의 요충지가 된 평택, 천안, 대전, 김천, 구미는 날로 변모했다.

1980년대 말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철도 건설 계획이 진행됐다. 청주시민과 충북도민은 철도에 맺힌 100년 한을 풀 기회가 올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1989년 9월 KTX(경부고속철도) 기본 노선이 서울~대전~부산으로 확정 발표됐는데 충북 땅 어느 곳에도 역을 설치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점잖은 양반 고을로 불리던 충북도민들이 일제히 분노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만 해도 지방자치제 실시 이전이어서 지방의 운명을 중앙정부가 쥐고 흔들던 시대였다. 중앙에 밉보이면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하는 무서운 분위기임에도 지역의 어른들이 먼저 들고 일어났다. 구한말 선대들의 오판을 되풀이하여 후대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는 각성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1990년 1월 '경부고속전철본선역충북권유치추진위원회'라는 긴 명칭의 단체가 구성됐다. 충북의 민간사회단체와 학계를 주축으로 전 도민이 하나로 뭉쳤다. 나의 기억으로는 충청북도의 총체적 역량이 이 때처럼 응집된 사례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다. 지금은 작고하신 해고 이상록 위원장님과 동범 최병준님(작고), 송암 박종헌님(작고) 등 수많은 지역 어른들이 앞 다투어 동참했다. 지역 대학의 다수 교수진은 충북(오송)에 경부고속철도 본선역이 설치돼야 하는 논리를 개발하여 추진위원회를 이론적으로 무장시켰고 중앙 정부를 상대로 전방위 설득 작업을 벌였다.
 
*** 충북인 서사 담긴 오송역
 
청주 남궁병원 사거리 충청북도새마을금고연합회 건물에 사무실을 차린 추진위원회에는 도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수시로 대책회의가 열렸다. 서울에서 경부고속철도 관련 회의가 열리면 수 십 명이 올라가 충북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추진위원회 임원들이 건설교통부를 찾아가 "충청북도의 충(忠) 자를 벌레충(蟲)으로 아느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성명서, 기자회견, 세미나, 토론회, 항의방문, 결의대회, 거리 서명운동 등 구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단결하고, 설명하고, 호소하고, 압박하고, 또 싸웠다. 극한투쟁 방법도 불사했다. 충북권에 경부고속철도 본선역을 설치하지 않으면 충북 땅을 지나가는 경부선 철도 부강~내판, 부강~신탄진의 좁은 협곡 구간에 트럭을 동원하여 암석을 쏟아 붓고 폭약을 터트려 철로 운행을 저지하고 감옥에 가겠노라고 중앙정부에 서면으로 공개적 선전포고도 했다. 무모했지만 그만큼 절박하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KTX오송역 유치가 신앙처럼 간절했기에 눈물겨운 다양한 투쟁이 가능했고 끝내 충북도민의 힘으로 KTX오송역을 쟁취했다.

KTX오송역에는 충북인의 서사가 배어있다. 오송역은 충북인의 후천적 DNA가 녹아있는 상징물이다. 이런 오송역에 위기경보가 수시로 울리고 있어 걱정이다. 세종시가 KTX세종역 신설을 끈질기게 추진함으로써 KTX오송역의 위상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KTX오송역 사수 외에는 답이 없다.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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