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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5.23 16:05:06
  • 최종수정2018.05.23 16:05:06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수필가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의 석곡리, 석실리는 그 어원을 '솝실'에서 찾을 수 있는데, '솝실'이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솝'이 '속, 또는 안쪽'의 의미임을 알게 해주는 지명이 바로 전라북도 익산시의 전이름인 '이리(裡里)'인 것이다. 지금은 익산시(益山市)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이리'라고 하면 이리역 폭발 사고를 생각나게 한다.

전북 익산시는 1995년까지 이리시(裡里市)로 불리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익산보다는 이리라는 이름을 익숙하게 생각한다. 목천포 북쪽 10여 가구의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솝리'가 이리(裡里, 속마을)로 바뀐 것은 호남선 철도가 놓인 뒤라고 한다. 1912년 호남선과 군산선의 개통과 함께 익산군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금마에서 이리역 주변으로 옮겨왔다. 호남선이 대전~익산에 이어 익산~김제 등 철도를 잇달아 개설하고, 1914년 1월 대전~목포(256.3㎞) 전 구간을 완성한다. 전주의 유지들은 지맥이 끊기고 지반이 흔들려 도시가 몰락한다는 이유로 호남선 전주 통과를 극구 반대했었다. 익산에 호남~군산선이 개통되고 근대문명의 경이를 목도하고 나서야 뒤늦게 철도를 유치, 1914년 12월 익산~전주 전라선 첫 구간을 폭 좁은 협궤철도로 놓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호남선이 익산의 시골 마을을 오늘의 익산(이리)이라는 큰 도시로 탄생시키게 되었으며, 만약 호남선이 일찍부터 공주와 전주를 통과할 수 있었다면 경부선은 천안에서 청주를 거쳐 '구미~상주~대구~부산'으로 가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빠른 경로인 '광주~이천~충주~상주~대구~부산'의 경로를 거쳤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조치원과 대전이라는 도시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충북이 크게 발전하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무상하다. 하여튼 사람과 물자가 폭주하는 솝리 일대는 1931년에 읍으로 승격했고, 같은 해 이리(裡里)로 공식 개명이 이뤄졌다. 1947년 시로 승격한 이리는 고속도로 개통 이전 승객 3위의 국내 철도 요충이었고 1977년 11월 11일 저녁 9시 이리역 폭발사고로 초토화되는 아픔을 겪은 이후 1995년 익산군을 통합, 익산시로 이름을 환원하며 인구 33만의 호남 3위권 도시가 되었던 것이다. 본래 익산 시내는 솜리, 솜니로 불렸다. 이리(裡里)는 이곳의 순우리말 옛 지명인 솜리, 솜니(솝리)를 한자로 옮긴 것이며 '속(솝)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듯 솜리는 작은 촌락이었는데 조선총독부가 만경~김제평야에서 수탈한 쌀의 수송을 위해 호남선을 부설하고 익산역(당시는 이리역)을 세우면서 급격히 외형을 달리하게 되었다. 호남선(서울특별시~목포시)과 전라선(전주시~이리~군산시)이 교차하는 철도 교통의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백제 이후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익산 지역의 중심은 미륵산 근처의 금마와 호남대로의 길목인 여산이었는데 백제 시절의 시가지로 추정되는 곳과는 다른 위치에 있는 시골 마을에 인위적으로 익산 시가지(이리)가 건설되면서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 역사 유적 지구로 등재된 미륵사지나 왕궁리 유적 등이 보존된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호남선 이리역이 들어서면서 일제는 익산군의 전통적인 중심지인 금마 지역 대신 새로운 중심지가 된 이리 지역을 '익산면'으로 명명하고, 1931년 '익산읍'으로 승격했다가 곧바로 '이리읍'으로 개칭했다. '이리'라는 지명은 '속마을'이라는 뜻으로 '솝리, 솜리로 불려왔는데, 일제에 의하여 '이리(裡里)'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일제가 굳이 '익산'을 '이리(裡里)'로 개명한 것은 '이리(狼)'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리라는 지명이 일제가 민족말살을 목적으로 정한 이름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을 통합할 때 통합시 명칭을 역사적으로 이 지역의 오랜 이름인 익산시로 한 것은 개명이라고 하기보다 우리 조상들이 사용해온 원이름을 되찾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한자로 의차하여 만든 이름이지만 일제가 아닌 우리 조상들이 한자로 표기하였다면 어떻게 표기하였을까? 향찰이나, 이두에서 보듯이 우리 조상들이 순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방식에 의하면 '속마을'에서 '속'은 음차로 하고 '마을'은 의차하여 '속리(俗里)'로 표기한다면 속리산의 어원을 찾는데도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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