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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현

건축사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16강 진출을 끝으로 대회 일정을 마쳤다. 우리나라가 극적으로 '경우의 수'를 맞춰 16강에 오른 데에는 가나 선수들의 지대한 공(功)이 있었다.

가나는 우루과이에 구원(舊怨)이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우루과이의 '수아레스' 선수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가나와 우루과이가 맞붙은 8강전에서 가나 선수의 헤딩슛을 우루과이 수아레스 선수가 손으로 막아 수아레스는 퇴장당하고 가나는 페널티 킥을 실축한다. 승부차기에서 가나는 2:4로 져서 4강 진출에 실패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신(神)의 손' 사건으로 가나 국민은 지금도 분노한다. 축구에서 공을 손으로 막는 행위는 가장 비난받는 행위이다.

12년이 지난 이번 대회에 가나는 예선에서 우루과이와 다시 만났다. 경기에 앞서 당시 사건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수아레스는 '사과하지 않겠다. 난 당시 레드카드를 받았다. 가나 선수가 페널티킥을 실축 한 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여 마지막으로 사과할 기회를 놓쳤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가나는 우루과이에 2:0으로 졌지만 더 이상 실점하지 않아 우리가 우루과이에 다 득점에 앞서 우리나라는 16강에 진출했다.

수아레스는 아예 사과조차 하지 않았지만 '사과'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타이밍과 진정성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사과하는데 인색하다. 사과하는 것은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시간이 가면 잊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사과는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조건 없이 책임을 인정하고, 사후 대책을 약속하고, 이를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대서 완성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정한 사과 대신 사과를 빙자한 '해명'을 하려 한다. 해명은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사과가 아니다. 그리고 '유감(遺憾)'이라는 솔직하지 않고 비겁한 말 뒤에숨는다. 유감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차지 않아 못마땅하고 섭섭한 느낌'이다. 즉 불만이나 섭섭함의 표현이지 사과는 아니다.

제대로 된 사과와 잘못된 사과의 예를 살펴본다. 10여 년 전 LG전자 드럼세탁기에 어린이가 들어갔다가 갇혀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LG전자는 문제가 된 105만 여대의 세탁기 전량을 리콜 하겠다 밝히고 세탁기 안전 캠페인을 통해 사용자의 주의도 부탁했다. 소비자의 과실로 전가시키지 않고 과실을 바로잡은 노력은 소비자의 신뢰를 받았다.

반면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아키히토 일왕은 환영 만찬에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 '한반도에 큰 고난을 안겨준 시기가 있어 슬프다'라고 해 논란을 불렀다. 무엇이 통석한 것인지 대상도 없고 사과의 말도 없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1984년 히로히토 일왕의 '불행한 과거에 대해 유감'이라고 얼버무린 것에 비해 발전된 것이라고 평가하여 이를 '사죄'로 받아들였다.

당시 정부는 '통석의 염'을 '뼛속 깊이 뉘우친다'라는 뜻이라고 공식 해석을 했으니 일본은 사과도 안 했는데 우리가 먼저 사과를 받아들인 모습이 되었다. 사과는 본래 빨리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명히 해야 하는데 일본이 패전한지 80년이 가까워도 '사죄'는커녕 제대로 된 사과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오늘의 현실이 씁쓸하다.

드라마의 대사는 가끔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1년 전 방영된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후일 정조의 후궁이 된 성덕임이 신분을 속인 왕세손(후일 정조)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한다.

'예, 배우십시오. 세상 모두가 저하의 아랫사람이며 그들 모두가 저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아랫사람에게 사과하는 법을, 백성에게 사과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진정한 군주는 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백성에게 머리를 숙인다 하였습니다. 그러하실 줄 모르는 저하의 모습에 소인은 지금 크게 실망하였나이다.'

빠르고 책임감 있는 진정한 사과는 패배나 굴욕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며 신뢰를 쌓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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