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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11.11 16:38:02
  • 최종수정2021.11.11 16:38:02

정익현

건축사

올해로 26회째를 맞은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 모처럼 우리나라 선수끼리 맞붙은 결승전에서 박정환(28) 9단이 신진서(21) 9단을 2승 1패로 꺾고 우승했다.

박정환은 한국 바둑에서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에 이어 오랜 기간 일인자 계보를 이어 왔다. 그러나 작년부터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신진서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특히 작년 경남 남해에서 신진서와 대결한 '남해 7번기'에서 전패를 했다. 바둑을 좋아하는 나는 박정환의 시대는 끝났는가 하는 우려와 함께 그가 좌절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하나 그는 보란 듯이 우승했다.

결승 1국에서 승리한 신진서는 국후 인터뷰에서 '박정환 9단에게서 아우라(aura)가 느껴진다'며 존경을 표했다. 또한 결승 2, 3국에서 승리한 박정환은 국후 인터뷰에서 '신진서 9단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다. (그로 인해) 내가 성장하고 있다. 작년부터 정체기가 왔다 생각했다. 신진서와 바둑을 두면서 내 약점이 잘 드러났다. 이번 결승에서 느슨하게 두면 밀리기 때문에 더 타이트하게 두었다. 작년 남해 7번기에서 전패를 한 것이 내게는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박정환의 인터뷰는 감동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라이벌(Rival)의 의미와 라이벌 간 나아갈 길을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 항상 겸손한 박정환, 바둑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한다고 중국 선수들도 인정하는 박정환의 말은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대체로 바둑의 최전성기 나이는 20대 초·중반이라 한다. 전성기를 막 지난 나이에 후배에게 1위 자리를 내주며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을 법도 한데 그는 의연하게 다시 일어섰다. 시합에서는 경쟁 상대였지만 상대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배우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라이벌의 아름다운 동행을 보는듯하여 보기 좋았다.

라이벌의 어원은 강(river)의 어원과 같은 것으로 라틴어로 강은 rivus, 이웃은 rivalis이다. 라이벌은 하나의 강을 함께 사용하는 이웃이라는 개념이라 한다. 물을 두고 서로 싸우는 경쟁자이기 보다 잘 나눠 쓰는 이웃이 되라는 의미이겠다. 라이벌은 서로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관계이나 경쟁을 통해서 함께 발전하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라이벌이 아닌가 한다. 바둑계에서는 조훈현 9단이 어린 이창호를 내제자로 하여 집에서 같이 기거하며 사제관계를 형성했지만 얼마 안 가서 이창호 9단이 스승을 넘어서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훈현 9단이 전성기 나이를 한참 지난 후에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처음엔 조훈현 9단이 이창호의 스승이었고 후에는 이창호가 라이벌로서 좋은 경쟁 상대가 되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결과인 듯싶다. 이처럼 라이벌은 같은 분야 사람 간에 형성되는데 스포츠나 예술 분야에 많고 정치 분야에서는 역사를 살펴보면 라이벌이라기보다 정적(政敵)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오죽했으면 윈스턴 처칠이 '전쟁에서는 단 한 번 죽으면 되지만, 정치에서는 여러 번 희생당해야 한다'고 했겠는가.

누구에게나 라이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 하나쯤은 있다. 라이벌을 잘못 설정하면 스스로 자신을 폄하시키든가 아니면 자신을 우월한 반열에 올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한때 온 국민을 긴장시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저 독재자일 뿐이지 라이벌은 아니었다. 라이벌은 상대를 긴장하게도 하고 심장을 고동치게도 한다. 경쟁자의 얼굴을 통해서 우리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선의의 경쟁은 야구의 최동원과 선동렬, 서로를 격려하고 비판하며 독일 고전주의를 완성한 괴테와 실러, 미술의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처럼 서로에게 동기 부여가 되지만 그렇지 않고 경쟁이 지나치면 앙숙(怏宿)이 된다.

붉게 물든 벚나무 잎, 노란 은행잎이 늦가을 햇빛에 빛난다. 지금 어느 먼 산자락 빨강, 연두, 노랑, 주황색 단풍이 서로 배경이 되어 눈부신 가을을 만들고 있겠다. 세상 일이 그렇듯, 라이벌이 서로 격려하며 동행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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