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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12.10 16:56:54
  • 최종수정2020.12.10 16:56:54

정익현

건축사

스포츠는 인간의 삶에 중요하다. 직접 하거나 관람하는 것 모두. 특히 지나친 몸싸움이나 심판의 눈을 교묘히 피한 반칙 없이 오로지 실력만을 겨루는 육상경기는 그만큼 순수하여 보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한다.

2011년〈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100m 결승. 국민들은 세계 최고의 선수 우사인 볼트의 멋진 역주를 기대하며 숨죽였다. 그러나 우사인 볼트는 단 한 번의 부정출발로 실격되어 운동장을 떠났다. 스포츠 경기의 냉엄한 규정 앞에 국민들은 아연실색했다.

두뇌로 실력을 겨루는 바둑도 육상경기만큼이나 순수함이 있었다. 적어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기 전까지는. 한국기원은 지난 11월 20일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김은지 2단에게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내렸다. 지난 9월 29일 온라인 기전 'ORO 국수전'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크게 두 가지 논란을 불렀다. 하나는 한국기원에 대한 비난이고 또 하나는 자격정지 1년의 징계가 합당하냐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많은 바둑대회가 비대면 인터넷 대국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음에도 대회를 주관하는 한국기원의 대처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공식 대국장의 환경이 프로기사가 바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인공지능을 사용한 부정행위는 이번 말고도 더 있었다. 한국기원이 주관하지 않는 대회라 해도 소속 프로기사가 참가하여 인공지능을 사용해 부정행위를 했으면 엄격한 대국 규정을 만들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함에도 그동안 인공지능 사용 금지와 처벌 규정 하나 없이 프로기사의 양심에 맡겼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징계에 대한 논란도 둘로 갈라진다. 1년의 자격 정지가 심하다는 쪽과 오히려 제명 처리를 하여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쪽이다. 아직 13세의 미성년자이고 앞날이 창창한 사람에게 과도한 처벌보다는 엄중 경고로도 충분하다는 동정론, 다른 하나는 미성년자이기 전에 프로선수가 갖는 책임과 의무로 볼 때 영구 제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린아이라고 동정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간단히 볼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공정한 경쟁'이 침해 되었을 때 어떠한 처벌이 작동하느냐, 프로기사의 가치와 한국 바둑의 앞날에 대한 문제이다. 일반 아마추어의 동네 바둑이라면 몰라도 프로기사가 된 이상 어린이, 어른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프로기사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승부를 가리고 실력에 따라 돈을 버는 직업이다.

고도의 두뇌 스포츠인 바둑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했다는 것은 단순한 조언이나 훈수가 아니라 모범답안을 보면서 시험을 쳤다는 것과 같다. 그렇잖아도 인공지능을 신처럼 떠받들면서 바둑 고유의 맛과 멋이 사라지고 덩달아 바둑의 인기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한국 바둑의 앞날에 치명적이다. 나이가 어리고 장래가 촉망되는 천재 기사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에 대한 엄정한 벌 없이는 인공지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자존감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2,200 년 전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韓非)의 「한비자」'초진견(初秦見)'에 나오는 말을 귀담아들어 본다. '입으로는 상을 준다 하고 상을 주지 않으며, 처벌한다고 말하고는 실행하지 않으면 상과 벌이 신뢰를 잃어 아무도 나라를 위해 죽어 주지 않는다.' 신상필벌의 중요성을 역설한 말이다. 또한 「한비자」는 형벌을 집행할 때 함부로 용서함을 경계했으니 섣부른 동정은 오히려 사회 혼란을 초래한다.

'천재 소녀'라는 이름이 부담되어 한순간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안타깝지만 프로기사로서의 엄격한 자기 관리는 중요하다. 인터넷 대국에서의 인공지능 사용에 대한 유혹은 언제나 있다. 이럴수록 프로기사에 대한 인성교육과 그 유혹을 차단하는 감시체계와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이유다.

승리에 대한 욕심으로 '양심'과 '공정함'을 잃어 인간이 인공지능 앞에서 더 이상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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