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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11.10 17:19:36
  • 최종수정2022.11.10 17:19:36

정익현

건축가

산자락 단풍이 절정을 지나는 10월의 마지막 주말 저녁, 처음엔 흔히 있는 사고로만 알았다. 그러나 계속 쏟아지는 소식은 어이가 없었다. '이태원 핼로윈 축제'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였다.

문득 지난날 어이없었던 사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끔찍하고 우리를 분노케 했던 황당한 사고들 - 1993년 28명이 희생된 청주 우암 상가 · 아파트 붕괴, 1994년 32명이 희생된 성수대교 붕괴, 1995년 502명이 희생된 삼풍백화점 붕괴. 더 오래전 1970년 33명이 희생된 서울 와우 아파트 붕괴도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이번 사고와 과거 악몽 같은 붕괴사고는 공통점이 있다. 일반적인 붕괴사고의 부실공사, 관리 소홀 외에 '예견된 사고'라는 것이 이번 이태원 사고와 맥을 같이 한다. 사전에 제때 적절한 조치만 했어도 사고로 인한 희생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사람'의 문제이다.

논어 '안연(顔淵)' 편에서 공자는 정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즉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에 비춰 표현이 다소 어색할 수 있으나 저마다 자기의 본분과 의무를 다하고 그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자기 이름에 걸맞게 '~답게'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시인 김광규는 '나'라는 시에서 수많은 이름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이렇게 노래했다.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

'재난은 사람을 가려서 오지 않는다' 한다. 과거를 돌이켜 봐도 사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이태원에 간 사람들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술 마시고 놀다가 일어난 사고를 왜 슬퍼해야 하냐고 하면 안 된다. 누구나 평범한 일상을 누릴 권리는 있다. 그곳에 간 사람들의 무질서를 탓하기에 앞서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가 문제 아닐까· 많은 인파가 몰릴 거라 예측했음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누가 길에서 156명이나 압사할 거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헌법은 제34조 ⑥에서 재해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또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은 총칙 제1조(목적)에 '이 법은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토를 보존하고 국민의 생명 ·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라고 했고 동법 제4조(국가 등의 책무) ①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 ·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라 했다. 결국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재난 사고에는 항상 평범한 시민들의 영웅적인 행동이 있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고가 나기 2시간 전 이미 골목길은 막히고 혼잡했는데 이때 한 여자가 올라오는 사람들을 소리쳐서 제지하고 내리막길을 일방통행으로 뚫었다. 사람 밑에 짓눌려 있는 사람을 꺼내어 여럿 생명을 살리고 홀연히 사라진 외국인. 시민 구조를 위해 소리치며 인파를 통제했던 이태원 파출소 김백겸 경사, 그는 '경찰관으로서 소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희생자 유가족,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들을 구한 경찰, 소방, 의료관계자는 물론 이 사고를 접한 국민 모두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느 전문가는 말한다. '외롭고 무거운 침묵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이 우리를 치유한다'고. 하루 빨리 사고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길은 일상으로의 회복이다. 따라서 이미 기획했던 행사를 무리하게 취소하는 것이 좋을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희생자를 애도하며 이번 사고를 거울삼아 사고 걱정 없이 일상을 영위(營爲)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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