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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현

건축사

2주일 새 8, 9, 10호 태풍이 경쟁이라도 하듯 숨 가쁘게 지나갔다.

가을인 것 같은데 마음은 무겁다. 뜨거운 여름, 마스크로 입과 코를 막고 살았다. 날씨가 추워지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유행 한다니 걱정이다.

방역 당국이 재 확산의 위험을 경고하며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이를 비웃듯 8·15 광화문 집회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촉발되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마스크를 더 단단히 조여 매야 했다. 코로나19가 오래 지속되자 사람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피로감에 지쳐있다.

며칠 전, 아내가 햄버거를 먹고 싶다 하여 집근처 'ㄹ'패스트푸드 점에 갔었다. 안으로 들어갔던 아내가 그냥 나왔다. 입구의 출입자 명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써야 하는데 개인정보 노출이 싫어서 햄버거를 포기하겠단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방역당국의 지침을 잘 지킨 저 상점을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저 상점은 정부를 원망하게 되고 이는 방역에 해가 된다.'고 설득하여 다시 그 상점에 간 일이 있었다.

이처럼 '자유'와 '안전', 양립하는 두 개념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하에 우리도 모르게 통제되고 있음에 고민이 크다.

코로나19는 노동의 형태와 소비의 행태를 바꾸었고 인간의 기본권 유보와 개인 정보 노출의 문제를 불러 왔다. 각 나라가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권력은 사회를 통제하고 개인의 자유가 유보되는 경향을 보인다. 조지 오웰이 70년 전, 그의 소설〈1984〉에서 '빅 브라더'에 의한 사회 통제를 경고한 혜안(慧眼)이 놀랍다.

다행히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사회의 성숙함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고 있지만 '개인의 자유'와 '국민의 안전'은 충돌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 37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보장하되 국가 안전 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로서 제한 할 수 있으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거리의 CCTV에, 손 안의 스마트 폰에 개인의 사생활이 아주 손쉽게 노출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검색하는 뉴스나 세상의 관심사가 그대로 읽혀 나에게 맞는 뉴스거리가 제공되는 스마트 폰을 대하며 섬뜩해지곤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머릿속이 누군가에 읽혀지고 감시당하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코로나19 같은 유형의 바이러스는 이제 우리와 공존하게 될 것 같다. 섣부른 낙관이나 방심, 그리고 지나친 의기소침은 코로나19와 맞서는 삶에서는 독이다. 베트남전쟁 때 전쟁 포로로 8년간 감옥생활 끝에 생환한 미국의 제임스 스톡데일 중령은 '곧 풀려 날 것이라 지나치게 낙관했던 동료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언젠가는 풀려날 것이라고 희망을 잃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연히 잘 될 거라고, 곧 풀려날 수 있다고 생가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무조건적인 긍정의 자세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이른바 '스톡데일의 역설'이다.

정부의 대응 못지않게 개인의 대응이 중요한 것은 확진자 발생 숫자가 현 의료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숫자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료의 붕괴는 최악의 사태를 불러온다. 방심하거나 만족하는 순간 위기는 온다. 언젠가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겨내겠지만 우리는 오늘, 지나친 낙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좋은 말이 샘물처럼 넘쳐나는〈빨강머리 앤>. '시간'에 대해 통찰한 대목을 음미해 본다.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하는 힘 아닐까.//

시간은 느리지만 결국/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나무를 자라게 한다.//

나는 그것이 시간이 하는 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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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대 건축(공)학과 50주년 기념사업위 김태영·김주열 공동위원장

[충북일보] 한수이남 최고(最古) 사학명문 청주대학교의 건축(공)학과가 개설된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1970년 3월 첫 수업을 시작한 이래 반세기 동안 2천400여 명의 졸업생과 400여 명의 석·박사가 청주대 건축(공)학과를 거쳐 갔다. 이들은 현재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 관계·산업계·학계 곳곳에서 건축설계, 시공분야 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건축학과로 출범한 청주대 건축(공)학과는 새천년 들어 5년제 건축학과와 4년제 건축공학과로 분리되면서 전문 건축인 양성의 요람으로 발돋움했다. 쉰 살의 청주대 건축(공)학과 동문회는 '개설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구성했다. 4일 기념식을 준비하면서 반백년간의 학과 역사를 정리해 한권의 책으로 펴낸 기념사업회 공동위원장 김태영 교수와 김주열 동문회장을 만나 청주대 건축(공)학과의 50년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50년간 청주대 건축(공)학과가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졸업생 2천400여명과 석사 박사 400여명을 배출한 것이다. 청주지역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70년 3월에 첫 신입생을 선발했고, 1980년부터 청주대 건축학과 출신 동문들이 전문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동문들은 건축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