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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현

건축사

꽃보다 아름다운 5월의 신록이 눈부시다. 푸른 하늘에 어버이날 효(孝) 잔치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너풀거린다.

오월의 사과밭은 연분홍빛 감도는 하얀 사과 꽃 향이 은근하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옛날 60년대, 아버지는 사과농사를 하셨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일손이 필요 했다. 당시는 과수원이 흔치 않았고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아 수확기가 가까워 오면 아버지는 사과를 지키러 과수원의 작은 농막에서 주무셨다. 5남 1녀의 가장이신 아버지는 법무사사무실을 운영하며 논, 밭, 사과농사까지 지으셨다.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아침저녁으로 농사일을 보시고 일요일에도 일을 하셨다. 아버지의 그런 근면함으로 우리 집은 궁핍하지 않게 지냈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크게 도와드리지는 못했지만 덩달아 바쁘고, 쉰다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더듬어본다.

중 3때 일이다. 영어참고서를 사려고 아버지 사무실을 찾았다. 돈을 타러 아버지 사무실에 가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아버지는 여러 사람 앞에서 '입시가 코앞인데 이제 참고서를 사느냐, 혹시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냐·'고 하실 때 나는 화롯불을 뒤집어 쓴 것 같이 얼굴이 화끈 거리고 창피하여 돈을 받아들고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내게는 가슴의 상처로 남은 그런 엄청난 말씀을 아버지는 왜 하셨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이 충격의 여파로 나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대학교 졸업여행도 내 스스로 가지 않았고 꼭 필요한 돈만 타서 썼다. 농사일과 생업에 바쁘셨던 부모님은 자식이 수학여행을 가는지 안 가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으셨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렇듯이 아버지는 우리들과 정겨운 대화는 없었다. 꼭 필요한 말, 이를테면 돈이 필요할 때나 개학을 하여 서울에 올라간다고 인사드리는 것 외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몰인정하거나 무섭게 하신 것도 아닌데 그냥 어렵고 근엄한 존재였다. 대학에 와서 서울의 친구가 '어제 아버지와 장래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눴다'는 말에 나는 낯설음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일방소통이 아닌 쌍방소통의 현장을 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자식들을 보살폈지만 우리는 아버지 곁에 가지를 못하고 어려워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여러 가지 책을 사 오시곤 했는데 한번은 세계소년소녀 동화전집을 사 오셨다. 책이 귀하던 시절 많은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미술반으로 학교 대표였던 나는 친구들이 12색 크레파스를 쓸 때 48색 '왕자크레파스'를 사들고 으스대며 다녔는데 이 또한 아버지 덕분이었다. 요즘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들다는 세상인데 부모님이 겪으셨을 인내와 고통 그리고 말없는 사랑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서로에게 편안함보다는 상처를 주기 일쑤다. 옛날에는 부모의 일방통행적인 소통이 당연시되었지만 지금의 가족관계는 개개인으로 핵 분열되어 소통이 막히면 갈등구조로 가기 쉽다. 이런 가운데 전후(戰後)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는 부모님을 공경했지만 아버지가 되는 교육, 어른이 되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배운 채 어정쩡한 아버지 위치에서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른바 '위기의 아버지' 시대에 살고 있다.

아버지께 은밀하게 저지른 저항, 이를테면 수학여행을 가지 않거나 공부하는데 필요한 돈 이외에는 철저하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불효 아닌 불효를 미처 용서도 빌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20년 전 80이 되던 해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였을까 자식에게 대, 소변 치우게 하고, 업혀야 하고, 떠먹여 주는 음식을 삼켜야 하는 그날이 오기 전에 뒷모습을 보여 주시지 않은 채 홀연히 떠나신 것이.

이 봄도 또 그렇게 훌쩍 가리라. 아버지께서 홀로 세상을 떠나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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