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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5.15 14:57:51
  • 최종수정2025.05.15 14:57:51

정익현

건축사

5월은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다. 어린 시절, 바람에 일렁이는 푸른 잎만큼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어린이날을 기다렸고 부모님의 은혜, 스승의 가르침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요즘 존경할 만한 어른이 사라진 것 같아 5월이 허전하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가르침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추사 김정희의 '불기심란도(不欺心蘭圖)'와 제갈량의 '계자서(誡子書)'를 통해서 옛사람의 가르침을 엿본다.

'불기심란도'는 추사가 아들 김상우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시우도(示佑圖)'로도 불리는데, 이는 그림의 화제(畵題) 끝에 '시우아(示佑兒)' 즉 아들 상우(商佑)에게 보인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그림은 난(蘭)을 그린 붓놀림도 일품이려니와 원숙미를 풍기는 추사의 글씨, 그리고 좋은 글이 어우러져 추사의 '세한도(歲寒圖, 국보 180호)'에 견줄만한 명품으로 친다. 글은 난초를 그리는 마음의 자세를 말했지만 이를 통해서 아비가 자식에게 인성을 가르치고 있다.

'난초를 그릴 때는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不欺心)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잎 하나 꽃술 하나라도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없게 된 뒤에야 남에게 보여줄 만하다. 열 개의 눈이 보고 열 개의 손이 지적하는 것과 같으니 마음은 두렵구나. 이 작은 기예도 반드시 생각을 진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서 출발해야 비로소 시작의 기본을 얻게 될 것이다' 이 글의 핵심은 '불기심(不欺心)'이다. '자기를 속이지도 말고 남도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난초 하나를 그리는 데도 이럴진대 하물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더 말해서 무엇 하랴.

시간을 거슬러 1천8백 년 전 중국 후한시대로 가본다. 삼국시대 촉 나라 재상 제갈량은 생애 마지막 '오장원 전투'에 앞서 8살 아들 제갈첨에게 86자로 된 '계자서'를 남겼다. 이 또한 어린 아들의 장래를 염려한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수신(修身), 학문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출사표(出師表)'와 더불어 제갈량의 명문으로 꼽히는'계자서'는 중국의 자녀 교육서로도 널리 쓰인다고 한다.

'계자서'의 핵심어는 고요함(靜), 검소(儉素), 마음이 맑고 깨끗한 담박(澹泊)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고요한 마음으로 몸을 닦고(靜以修身) 검소한 마음으로 덕을 기르라(儉以養德)' 그리고 우리가 고사성어(故事成語)처럼 알고 있는 '담박명지(澹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이다. 원문은 '마음이 맑고 깨끗하지 않으면 큰 뜻을 밝힐 수 없고(非澹泊無以明志),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큰 뜻을 이룰 수 없다(非寧靜無以致遠)'. 지난봄 남쪽 여행 때 고흥에서 여수로 가는 길, 연륙교(連陸橋)로 이어진 섬 '낭도'에 들렀는데 마을 길 담에 '澹泊明志 寧靜致遠'이라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시대와 나라를 초월한 두 사람의 가르침은 자식 교육을 떠나 세상 사는 이치를 같은 맥락으로 말해 주고 있다. '자신을 속이지 말고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 생각을 진실하게 하라. 맑고 깨끗한 마음,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큰 뜻을 이루라'고 했으니 오늘날 양심을 속이고 뻔뻔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이들에게는 혼을 깨우는 소리가 되었으리라.

지금 우리는 염치(廉恥)와 양심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부끄러움은 늘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의 몫'이 됐다. 오늘날 여러 가지 이유로 선생님이 학생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따끔하게 훈육하지 못하는 세태에 나 자신도 추사나 제갈량처럼 가르치지 못했음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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