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경숙

청주시 문예운영과 문예운영팀장

가을하늘 아래 곱게 뻗어 내린 예술의전당 지붕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릴 적 문산관 앞 운동장에 펄럭이던 만국기가 떠오른다. 그 아래 입을 꼭 다물고 땀이 가득한 주먹을 꼭 쥐고 서 있는 어린 내가 보인다. 이어달리기 선수로 뽑혀 네 명이 한 팀을 이루고 누가 첫출발을 하고 누가 마지막 질주를 할 것인가를 정한 후 쿵쿵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출발 선상에서 힘차게 달려오는 친구의 바통을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이 생생하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라고 외치는 함성이 가을 낙엽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다가와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가는 듯하다.

그런데도 수확 후 텅 빈 들판에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처럼 가슴 한구석이 시리고 휑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 년 내내 정성스레 가꾸고 키워 거둬들인 곡식을 차곡차곡 창고에 쟁여 놓았으면 가슴이 뿌듯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이상한 바이러스와 싸우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닳고 닳은 마음을 누가 헤아려 주기만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서러운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그 감정이 들끓으니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피를 토해내듯 더 빨갛게 보인다. 눈앞이 어질어질하여 두 눈을 꼭 감았다 뜬다.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은 타오르는 햇살에 몸을 맡기고 가을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들 중에는 전시실에서 나와 자리한 두 분의 수녀님도 보인다. 수녀님을 보니 얼마 전 '이해인의 말'이란 책에서 읽었던 글귀가 나를 위로한다. "장구한 세월 숱한 발길에 채이던 돌멩이가 닳고 닳아 빛이 난다"라는 글이 가슴에 박힌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이해인 수녀의 어머니께서 수녀님께 보낸 글이다. 강물 따라 걷다 보면 물살에 깎인 둥글둥글한 돌들을 볼 수 있다. 매끄럽고 부드럽기까지 한 돌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풍파와 싸우며 견뎌냈을까. 이해인 수녀 어머님의 글은 인생의 경험에서 얻어낸 삶의 진리라는 생각을 하며, 연륜이 묻어나는 삶을 향해 한 발씩 내딛는 발자국도 바르게 몸가짐을 다잡아 본다.

살다 보면 사람들과 선의의 경쟁도 하고 서로 부딪히며 상처도 받고 그 상처가 아물고 또다시 새 살이 돋아나고. 그러한 억척스럽기까지 한 적극적인 자세가 삶의 만족도도 높이는 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가 뭐라 하건 내 생각을 말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겉으론 보기엔 순한 양일지 몰라도 나라는 주체가 없는 빈껍데기는 아닐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벌집 같은 머리가 더없이 복잡한 미로를 만들고 있다.

시리도록 높게 뜬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옷을 입고 청군 깃발을 든 응원 대장의 손짓에 환호하는 함성과 그에 질세라 있는 힘을 다해 목청을 높이는 백군 응원 대장과 그 무리가 함께 어깨동무하고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구름은 말없이 유유히 흘러간다. 내 맘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너무도 평화로운 모습이다.

네 명이 이어달리기하면서 터득한 것이 있다. 달리기만 잘한다고 해서 일등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 주자와 호흡을 맞춰 바통 터치를 잘해야 한다. 무조건 달리다 보면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는데 실패할 확률이 높다. 서로 거리 유지를 하면서 간격을 조절하여 바통을 주고받아야 한다. 출발선에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전력 질주하여 달려온 사람을 위해 조금씩 앞으로 나가면서 바통을 받기도 하고 너무도 힘들어 보일 때는 조금 뒤로 나가서 바통을 받는 것이 하나의 기술이고 배려가 될 수 있다. 달리기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도 이어달리기에서는 일등을 장담할 수 없다. 넷이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한 마음으로 같이 할 때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오늘도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끊임없이 이어달리기하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누가 내 바통을 받아줄까. 흘러가는 구름 따라 내 시선이 예술의전당 용마루에 매달린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