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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문예운영과 문예운영팀장

종일 쏟아지는 물 폭탄이 전해주는 안타까운 사연들로 한숨만 커져간다. 밤새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멈춘 일요일 아침. 햇볕이 반갑다. 고막이 아프도록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정겹게만 느껴진다.

평생 바쁘게만 살아온 어머님이 병실에 누운 지 한참이다. 지난번 들렸을 때,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옥수수를 받아 드시던 모습이. 내 마음을 콕콕 찌르며 아프게 한다. 며칠 전 삶아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옥수수를 꺼내, 다시 불에 올리고 병원에 갈 채비를 했다. 따뜻한 밥 한 끼 해드리지도 못하고 받기만 했던. 그리 예쁜 며느리는 아니었을 텐데, 반가이 맞아 주신다. 옹이 박힌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킨다. 햇빛이 나왔다고 밖에 나가고 싶으신가 보다. 얼마나 속이 답답하실까. 마음대로 걸을 수도 없고, 숟가락도 들을 수 없는 처지가 된 심정이 얼마나 복잡할까. 나를 바라보며 "물난리 때문에 갇히고 코로나 때문에 갇히고 모두가 감옥에 갇혔어"라고 하신다.

챙겨 간 옥수수를 병실에 있는 분들에게 나누어 드린 후, 옥수수 한 알 한 알 따서 입에 넣어 드렸다. 꿈만 같다. 어느 누구보다도 자존감이 높으신 분이었는데.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돌봄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처음 병원에 모시고 갔을 때는 금방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점점 기력을 잃고 쇠약해지신다. 천둥 번개 요란하게 치는 요즘 날씨처럼 내 마음도 시끌시끌 복잡하기만 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언젠가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줄은 알지만. 태어나서 산다는 것.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본다. 아이가 엄마 배 속에서 유영하며 놀다가 넓은 세상을 향해 나왔을 때. 엄마와 분리되었다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울음을 터뜨렸으리라.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변 색깔과 냄새로 건강을 체크하기도 했는데. 내가 지금, 어머님에게 향하는 마음이 아이에게 했던 그때와 절대 같을 수가 없음에 쓴웃음을 짓는다. 나도 어머님처럼 아이들에게 같은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겠구나. 오히려 더 외로이 병실에 누워 있을 수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온다.

아이가 누워서 방긋방긋 웃는 모습은 넓은 세상을 향해 우뚝 서서 걸어 나가겠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면. 어머님이 나를 보며 웃는 모습은 무엇을 의미할까. 누워 계셔도 자식 걱정이다. 다리 아플 테니 의자에 앉아 쉬라고 걱정하신다. 이제까지 어느 정도의 선을 긋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셨던 분이었건만. 어느 순간의 기억 속에 살고 계신지 가끔은 헛소리도 하신다. 옥수수 한 알 한 알마다 그동안 못했던 나의 용서를 빌어본다. 내 마음을 아시기라도 하시는 건가. 살포시 미소 짓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아이의 순수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살다가는 인생이라 생각하니 숙연함이 밀려온다. 어쩌면 어머님이 말씀하신 대로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창살 없는 감옥으로 나 자신을 밀어 넣고 사람들과 터놓고 이야기하며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먼저 마음으로 다가가서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 나 스스로를 내려놓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동안 그렇지 못했던 행동이 누워계신 어머님을 마주하며 느껴진다. 아직은 내 아이를 돌보듯 어머님을 돌볼 수 없지만. 차츰차츰 마음의 문을 열어야겠다. 유난히 자존심 강한 분이 스스럼없이 몸을 맡기시는 모습에 내 마음속에 있던 조그마한 응어리까지 녹아내린다.

그래도 어머님과 고운 정 미운 정이 듬뿍 들었으니 다행이다. 어머님이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당신의 손으로 옥수수를 들고 하모니카를 불었으면 좋겠다. 조용히 귀 기울이리라. 어머님의 노랫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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