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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문예운영과 문예운영팀장

아파트 화단에 수줍게 피어있는 꽃을 보았다. 몇 해 전만 해도 나무들이 울창했었는데 수많은 비둘기가 찾아와 폐를 끼치는 바람에 나무들이 싹둑 잘려 나갔다. 그 자리에 낯선 나를 대하는 게 부끄러운지 살포시 고개를 숙인 붉은 꽃이 눈에 가득 담긴다.

우암산 둘레길을 걸을 때마다 들렀던 절에서 보았던 붉은 꽃. '왜 해당화가 여기에 피어있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노랫말에는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라고 나오는데 왜 절 마당에 해당화가 피었을까. 잘못 인식된 꽃 이름이 무척이나 나를 혼란하게 했던 그때. 함께 절에 들렀던 지인이 그 꽃은 "명자꽃"이라고 일러주었다. 아파트 화단에 피어있는 명자꽃이 절로 미소 짓게 한다.

어릴 적 내 친구 명자는 수줍음 많은 아이였다. 지금도 호탕하게 웃는 법이 없다. 엷은 입술로 살포시 웃는다. 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겉보기엔 섹시한 머리 스타일, 화려한 옷차림이지만 친구 손맛에서 나오는 맛깔 난 반찬과 구수한 숭늉 같은 그녀의 말씨는 건강미가 넘친다. 초등학교 친구인 명자를 다시 만난 건 그녀가 시청 근처에 맛있는 밥집을 차렸을 때이다. 피곤함에 지친 내가 들를 때마다 어머니처럼 큰 걱정을 하며 한쪽에 잘 보관해 놨던 보물단지에서 일품인 반찬을 꺼내 놓고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했다.

지금은 삼겹살거리에서 여전히 남편과 함께 깨소금을 볶으며 맛난 음식으로 풍미를 느끼게 하고 있다. 산과 들로 직접 다니며 채취한 제철 반찬들이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어릴 때 먹던 씀바귀가 생각나 얼마 전에 친구 집에 들렀는데 역시나 제철 음식들로 한 상을 차린다. 정말 오랜만에 봄 향기 가득한 음식들로 입이 호강했다. 살찌우는 음식에 여전히 변함없는 친구의 구수한 말투와 미소가 온몸을 따뜻하게 한다. 덕분에 몇 달은 거뜬히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주는 것 없는데 매번 늘 걱정해주고 반갑게 맞아주는 변함없이 늘 한결같은 내 친구 명자. 화단에 피어있는 명자꽃이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명자꽃이 주는 행복. 명자꽃 꽃말이 신뢰, 수줍음이란다. 내 친구 명자가 나에게 주는 변함없는 마음이 내가 어머니처럼 의지할 수 있게 했을 터이다. 늘 수줍게 웃는 내 친구의 미소와 구수한 말투 그리고 거기에 변치 않는 맛깔스러운 음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주었겠지. 누군가에게 그런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축복일까. 내가 가진 그 무엇으로 타인에게 기쁨을 주며 사는 것이 참으로 진정한 삶이 아닐까. 풀처럼 여린 식물을 화분에 심어 이십 년을 넘게 보살피니 밑동이 튼튼한 나무로 자라 꽃을 피우고 그 은은한 향기에 마음을 달랜다던 언니의 말에서도 인생의 깊이를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니 친구들이 더 보고 싶고 그립다. 대부분 사람을 보면 젊은 날은 바쁘게 허둥지둥 살고 중년 이후가 되면 동창회에 나가 친구들도 만나며 어린 시절 추억거리로 웃음꽃을 피운다. 아마도 장성한 아이들이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니 텅 빈 집안의 공허한 마음을 어릴 적 옛 추억으로 달래려는 마음은 아닐는지.

매 순간 만나는 사람들을 미소로 정성스럽게 대한다면 얼굴 붉힐 일은 없을 텐데. 좁은 마음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했던 뾰족한 내 마음을 내 친구 명자 향기로 녹여야겠다. 무심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벚꽃도 주말에 내린 비와 바람에 꽃비로 흩날려버리고 이제 붉은 기운을 내뿜는다. 화려함은 없지만 싱그러움 가득한 나무와 변함없이 흐르는 무심천을 따라 걷다 보면 다다를 삼겹살 거리. 꽃향기 가득한 그곳에 내 친구 명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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