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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팀장·수필가

퇴근하여 돌아오면 발길은 시곗바늘 가듯 저절로 주방으로 향한다. 식탁과 개수대 위, 여기저기 그릇들이 놓여져 있다. 남편의 밥그릇은 위엄을 나타내는 듯 딱딱하게 굳은 밥풀들이 손끝을 아프게 한다. 아들의 밥그릇은 비벼 먹고 남은 흔적들이 자유분방한 성격을 대변하고 있다. 딸의 밥그릇은 엄마를 위로하는 다정한 말을 삼키고 있듯이 자싯물통 속에 잠겨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문득, 더운물도 나오지 않던 시절에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차가운 물로 그릇을 닦던 어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이맘때면 어머니의 손등은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았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퉁퉁 부어 있었다. 밥 먹고 나면 그릇을 부뚜막에 살짝 갖다 놓기만 했던 철부지였던 내가 부끄럽다. 그래도 나를 위한다고 그릇을 물에 담가 둔 딸이 대견스럽다.

어느 비 오는 날, 딸아이는 손에 우산을 들고 있으면서도 비를 흠뻑 맞고 왔다.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할머니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단다. 우비도 입지 않은 할머니는 비에 젖은 종이로 무거워진 손수레 때문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단다. 비록 옷은 다 젖었어도 할머니를 도와드렸다는 뿌듯함으로 방실방실 웃던 딸이었다.

타인을 배려(配慮)하는 사람의 행동은 역시 다르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사무실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줄이려고 컵을 비치해 놓았었다. 대부분의 직원은 자신만의 컵을 갖다 놓고 사용했으나, 손님이 방문할 경우엔 비치해 놓은 머그잔으로 차(茶) 대접을 해야 했다. 손님이 돌아 간 후 다용도실의 모습은 찻잔을 사용한 직원의 마음을 닮아있었다. 차(茶)가 남은 상태로 있기도 하고, 차(茶)색으로 물든 잔이 누군가 씻겨주길 바라며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가끔은, 깨끗하게 씻어진 자태로 빛을 발하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찻잔을 윤기(潤氣)가 나도록 씻어 놓은 직원의 서류함을 보면 찾기도 편하고 보기도 좋게 정리가 잘 되어있다. 일도 적극적이고 신속하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직원의 서류함은 왠지 산만하다. 정돈(整頓) 되지 않은 서류들이 주인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는 걸까. 문서를 찾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일 처리도 느려져 스스로도 답답함을 호소한다. 그 모습을 보는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로 도와 줄 수도 없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속담은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은 일상 속에서 습관처럼 행하는 몸짓 하나하나에서 배어 나온다. 그것이 그 사람의 인성(人性)이다. 나를 보고 사람들은 차갑다고 말한다. 어릴 적 자신 밖에 모르던 속 좁은 몸짓들이 쌓여 나의 성품(性品)이 만들어졌고, 밖으로 표출되는 표정과 행동거지에서 나를 읽고 있다. "인성은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하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올바른 행동이 몸에 딱 달라붙어 습관화(習慣化) 될 때, 사람의 됨됨이도 변화를 가져온다는 말이 아닐까. 글공부를 하면서 깊이 생각하고 차이(差異)를 인정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고(思考)의 변화는 관대(寬大)함과 긍정(肯定)의 마음도 심어 주었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얼굴이 밝아졌다는 말도 듣는다. 베풀고 살아가려는 노력이 인상(印象)도 바뀌게 함을 알아가고 있다.

작은 습관들이 모여 규범을 정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법을 제정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 눈의 큰 티는 못보고 남의 눈에 작은 티를 꼬집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보살피는 마음을 자싯물통에서 배운다. 설거지에서 얻은 소소한 깨달음으로 삶의 소중한 가치를 느끼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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