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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문예운영과 문예운영팀장

오래전 왔던 길이건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심호흡하며 올라가다 멈추고 올라가다 멈추고를 반복하며 걷는다. 나를 옭아매고 있던 잡념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를 바라며 멀리서 들려오는 불경 소리에 맞춰 한 발 한 발을 내딛는다.

옆에서 앞에서 걷고 있는 할머니들은 어디서 힘이 나는 걸까. 간절함으로 무장된 불심 때문일까. 가볍게 산을 올라가는 모습에서 오래도록 이 길을 오갔음을 짐작해본다. 자식의 무해 무탈함과 자자손손 번성하기를 빌며 손과 발이 닳고 허리가 굽어 갔으리라. 나는 누굴 위해 간절하게 빌어봤던가. 나 하나만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생각에 잠긴다.

몇 번을 쉬며 올라간 계룡산 정상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올라올 땐 한 걸음 놓기가 무겁기만 했던 다리였는데. 여기저기 내려다보이는 울긋불긋한 가을 산을 눈에 담기 위해 분주하게 오간다.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붉게 물든 단풍은 숨 가쁘게 방망이질하는 심장이 터진 듯 발갛다. '아~ 참 예쁘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올라올 때는 눈앞이 캄캄하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온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 내려올 때 보았다고 늙은 시인은 노래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듯 시를 읊조려본다. 산을 오를 때는 정상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갑갑함에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오로지 꼭대기를 향하는 마음으로 힘들기만 했건만. 올라간 그 길을 다시 내려오는 발걸음은 사뭇 다르다. 올라갈 때 쉬었던 바위도 보이고 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타고 떠내려가는 나뭇잎도 보인다.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소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바위틈에 뿌리내리며 살아온 힘듦이 휘어진 몸통이며 여기저기 박힌 옹이들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 고된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마스크 하나만으로도 숨쉬기 힘들고 가슴이 답답한데. 무더운 여름에도 방호복을 입고 견뎌내며 우리 건강을 지켜 준 고마운 의료진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다시 살아갈 힘을 내는 이웃들. 그 가슴에 박힌 아픔이 힘겹게 살아가는 나무에 박힌 옹이가 되지 않고 봄볕에 얼음이 녹듯 치유될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가을 산을 품어본다.

하나, 둘.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오늘이다. 내가 산에 오를 때 정상을 향해 걸어간 길은 막연하게 다가오는 미래를 향한 오늘이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나는 이미 그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와 용기를 줄 수 있는 경험자의 오늘이 되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패기는 탐험가가 지녀야 할 필수조건일 수 있다. 그 탐험이 성공적이려면 이미 경험했던 많은 탐험가의 경험으로 한층 더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한 길 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이리도 가보고 저리도 가보고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걸어갈 때 또 다른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간 경험의 기록들은 미래를 향한 항해의 큰 길잡이가 될 것이다. 나보다 먼저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의 말과 글은 나를 더 살찌울 것이고 인생이란 여정을 도울 것이다.

산 정상을 오를 땐 느끼지 못했던 여유도 목적지가 어딘지를 알고 내려올 때는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는 산을 오를 때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오갈 때마다 느낄 수 있으리라. 대한민국이란 땅을 나보다 먼저 밟은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들과 지금의 나. 그리고 나보다 뒤에 이 땅을 밟은 세대들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많은 다름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박물관에 들러 백제시대 멋진 보물들을 보았다. 생활방식이 다른 지금도 과거의 유산과 유물을 보고 왜 감동할까.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을 귀 담아 들어봐야겠다. 그 속에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보물이 숨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선배의 경험이 소중한 자산으로 뿌리내리고 꽃 피울 수 있는 문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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