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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청 문예운영과 문예운영팀장 ·수필가

바람 한 줌 날아오니 힘없이 떨어진 나뭇잎이 길가에서 바스락바스락 노래를 한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작은 몸짓으로 마지막 삶을 몸부림치는 소리일까. 제법 쌀쌀한 날씨와 함께 생명이 다한 낙엽이 몸을 움츠리게 한다. 길가 찻집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로 마음을 달래 본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거리의 가을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길가에 놓인 화분에는 가을 전령인 국화꽃이 소복소복 피어있다. 그윽한 향기와 온화한 미소가 전해져 온다. 며칠 전 함께 저녁식사를 하시던 노교수가 내게 물어왔다. 공자님이 말씀하시는 "어질 인(仁)"을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며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일행을 한 공원으로 안내했다. 그 길을 몇 번이고 지나갔어도 한 번도 들른 적이 없었던 신율봉공원이다. 노교수는 낙엽 속에서 페트병 두 개를 꺼내 물을 가득 담는다. 보여 줄 게 있다며 계단을 오르신다. 이제 막 시작한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건가· 새로운 운동법을 개발하신 건가· 왜, 페트병 두 개를 들고 오르시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랐다. 160여 개가 넘는 계단을 한 번에 오르기엔 숨이 가쁘신 듯 힘겨워하신다. 그러고 보면 운동법을 보여주시려는 건 아닌 듯하다. 궁금증이 돋아 빠른 걸음으로 올랐다. 공원을 오르며 보니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도 보였다. 반질반질한 운동기구들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오르내리는 듯하다.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의 평온한 휴식을 주는 아담한 공원이었다. 요즘 노교수는 이 공원에서 두 시간 이상을 머문단다. 사람들이 오르내리며 쓸려 내려가는 흙을 더 이상 내려가지 않도록 낙엽을 덮어주기도 하고. 공원 정자에 앉아 잠시 책을 읽을 수 있게 책도 갖다 놓으신단다. 그날 아침에도 책을 몇 권 갖다 놓으셨다는데 한 권의 책도 남아있지 않았다. "누군가 가져다 읽으면 좋은 거지"라고 말씀하신다. 계속 책을 갖다 놓으실 생각이신가 보다. 퇴직을 하시면서 몸 담았던 학교에 퇴직금도 쾌척하신, 재물에는 욕심이 전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마음을 비우고 앎을 실천해 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 밖에 모르며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고개가 숙여졌다.

노교수는 공원 한 모퉁이로 안내를 하시며 해맑은 표정을 하신다. 거기엔 작은 화단이 있었다. 노랗게 핀 국화꽃이 반겨주었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이곳 공원을 예쁘게 가꾸시려고 꽃씨도 뿌리셨단다. 내년에 피어날 꽃들을 생각하시는지 얼굴빛은 티 없이 밝은 소년의 모습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혼자 묵묵히 실천하시며 행복해하시는 모습에서 "배려"를 배운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어질 인(仁)이 곧, "사랑"이 아니겠는가라는 결론을 얻으셨단다. 누군가를 위해서 솔선하여 실천하고 유익하게 해주는 일. 언제나 자신을 낮추며 남을 위해 기꺼이 애쓰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들고 온 페트병 물을 국화꽃에 주는 모습에서 꽃과 나무를 노래하는 나무 박사인 노교수의 인자함을 느낀다. 가을의 풍요로움 속에서 마음의 때를 벗기고 타인을 생각하고 위하는 너그러움을 배운다. 길가에 서서 온몸으로 나를 위해 노래하던 나무들도 이제 하나, 둘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남긴 채 겨울잠을 자겠지. 나도 인생이란 무대 위에서 열정을 갖고 노래하고 뛰다가 언젠가는 빈손으로 가겠지. 어떤 존재로 기억이 될까·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그런 생각 또한 욕심은 아닐는지.

아름드리 국화꽃 두 그루. 오늘도 사랑의 물을 주고 있을 노교수의 마음이 내 마음을 노랗게 물들인다. 낙엽이 다 떨어지기 전에, 나도 누군가의 가슴을 물들일 수 있는 사랑 꽃 피울 수 있길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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