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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팀장·수필가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봄비답지 않게 많은 비가 목마른 대지를 적신다. 차 앞 유리창에서 또르르 흐르는 빗방울이 나를 향해 달려와 메마른 감성을 노크한다. 순간 앞이 캄캄해진다. 반사적으로 와이퍼를 작동시킨다. 쉼 없는 움직임으로 빗물을 닦아내는 소리가 쏟아지는 빗방울과 함께 음률을 타며 어우러진다. 연신 움직이는 와이퍼 덕에 마음도 차분해지고 시야도 맑아진다. 모처럼의 빗소리에 봄의 교향곡을 감상하듯, 온몸의 신경이 촉각을 세운다.

며칠 전, 친구가 고민을 전해왔던 일이 떠올랐다.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단다. 당연히 아들과의 대화는 단절이라며,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을 했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수정처럼 맑았던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거리가 생겨 얼음처럼 차가운 벽을 만들었으니 안타깝기만 했다. 나 자신도 아이들을 키우며 수없이 경험한 일들이지만, 쉽게 고민을 해결할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친구의 아들이 무슨 이유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판단해서 이야기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그 일로 가슴이 답답했던 기억이 빗줄기와 엉키며 새끼줄을 꼬는 듯하다. 문득, 마음을 덮고 있는 얼룩을 와이퍼로 깨끗이 닦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 오는 날 '와이퍼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안전한 운전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와이퍼 작동을 멈춰봤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쏟아지는 빗줄기에 눈 뜬 장님이 되고 말았다. 평소, 그리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도 존재의 가치가 있고 언젠가는 그 가치를 발휘할 기회가 온다고 생각을 한다. 아주 작은 미물이라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방울이 굵어지고 바람도 불어왔다. 점점 어두워지고 차량 통행이 없는 도로는 무섭기까지 했다. 차 앞 유리를 열심히 닦아주는 와이퍼 덕에 내 눈이 사물을 분간한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겸손해져야 함을 배운다. 보이지 않는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와이퍼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해줄 수는 없을까· 미래의 불확실함에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밝은 미래를 꿈꾸고 계획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싶다. 어둡게 드리워진 삶의 막막함을 닦아내주는 와이퍼 역할을 하고 싶다.

요즈음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색안경을 끼고 보다가 오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도 마음의 와이퍼를 하나씩 가져보면 어떨까. 차창의 이물질을 닦아내며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하는 와이퍼처럼. 속마음은 보려 하지 않고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려는 외모지상주의 경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쓱쓱 싹싹' 마음의 눈을 맑게 해주는 와이퍼를 움직이게 말이다. 마음의 와이퍼는 각자의 신앙이 될 수 있고, 가치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서 마음의 와이퍼는 무엇일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여 주고 믿음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 이웃으로부터 신뢰받으며 살고 싶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먼저, 마음의 눈을 덮고 있는 오만과 편견을 벗겨내고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

보기 드문 많은 비가 내린 뒤 대지는 푸름이 더해간다.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싹트고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자연도 서로의 허물을 벗고 교감을 나누고 있다. 비를 머금고 꽃을 피운 산수유에는 벌들이 떼를 지어 날아와 속삭이고 있다. 어제 내린 비가 세상을 깨끗하게 닦아 냈는가 보다. 정말로 큰 와이퍼가 움직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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