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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4.16 17:48:06
  • 최종수정2019.04.16 17:48:06

김경숙

청주오송도서관 운영팀장·수필가

아침부터 미세먼지로 우중충하다. 봄꽃에 취한 듯 들뜬 흥겨움마저 뿌연 하늘의 무게에 짓눌려 가라앉는다. 목이 간질간질해온다. 아침저녁 쌀쌀한 공기에 감기가 오려나 보다. 먼지를 씻는 데는 돼지고기가 좋다는 속설을 굳게 믿고 있는지라, 퇴근길 정육점에 들렀다. 주인장이 고기를 손질하는 동안 옆에 있던 아저씨는 갖가지 야채를 듬뿍 담아주셨다. 게다가 맛 좋게 생긴 무 한 개를 덤으로 넣어주셨다.

집에 돌아와 펼쳐보니 삼겹살 먹을 때 필요한 야채며 쌈장까지 들어있었다. 싱싱한 상추는 기본이고 깻잎, 양송이버섯, 파, 고추, 마늘에 파무침 양념장까지. 무심코 들른 정육점에서 환대를 받은 듯, 횡재를 맞은 듯 기분이 업 되어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덤으로 얻은 무에 눈길이 멈춘다. 무의 무궁무진한 변신이 가져다준 행복했던 시간이 펼쳐진다. 봄날 친구들과 논두렁에 앉아 뜯었던 벌금자리. 무와 함께 새콤달콤하게 무쳐 냉이 된장찌개 넣고 썩썩 비벼 먹었던 추억이 오래된 사진첩이 되어 다가온다. 여름날 더위에 입맛을 잃었을 때는 밥을 물에 말아 무장아찌 하나 얹어 먹으면 꿀맛이었다. 물이 약간 있게 담근 섞박지도 일 년 내내 입맛을 돋워주었다. 가을이면 얼음이 살짝 언 동치미에 말아 먹었던 국수도 행복한 포만감을 가져다주었다. 김장 날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수북하게 쌓아놓은 배추로 김장을 한 후 얼큰한 동탯국에 몸을 녹였었다. 그때 큼직하게 썰어 넣었던 무가 너무도 달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기억으로 지금도 동태보다는 푹 익은 무만 찾는다. 김장철이면 땅을 파서 김장독을 묻고 한옆에 깊게 판 굴에 무를 저장해 두었었다. 아침마다 구덩이 속에서 꺼내 깎아 주셨던 무는 너무도 시원하고 달콤한 꿀맛이었다. 체기가 있을 때 먹으면 소화도 잘되어 소화제가 따로 없었다. 무 하나에 어린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덤으로 얻은 무 하나가 커다란 행복을 느끼게 한다.

무는 사시사철 무한한 변신으로 입을 즐겁게 하고 마음도 살찌웠다는 생각이다. 너무 흔해서, 언제나 볼 수 있어서 귀한 줄 모르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있는 듯 없는 듯, 늘 함께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을 떠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늘 습관처럼 한 행동이 무례함으로 다가가지는 않았는지. 기본적인 원칙만 내세울 게 아니라, 무엇을 더 원하는지 고민을 하며 살아왔는지. 정육점 주인이 고기만 팔면 될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고기를 구워 먹을 때 필요한 갖가지 야채를 함께 넣어주는 것은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좋은 고기를 파는 것은 물론이고 손님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는 방증도 되겠지. 마음이 후덕한 정육점 아저씨에게서 삶의 철학을 배운다.

기본원칙과 규정만 내세울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요구를 읽고 변화시켜가야 함을. “예전에는 그랬어.”보다는 “이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를 고민하게끔 한다. 옛것이 그리운 것은 그만큼 내 삶에 편하고 익숙함이 아닐까. 내 삶에 익숙하다고 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이 어렵겠지. 익숙함 위에 새로움을 더하는 마음. 그 마음이 손님의 요구를 읽어내는 후덕한 삶을 가져다준 것이리라.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덤으로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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