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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청 문예운영과 문예운영팀장 ·수필가

사방이 고요하다. 차들이 빼곡히 차지하였던 너른 주차장이 텅 비었다. 배흘림기둥과 처마선이 외부 조명으로 그 멋들어짐을 더 뽐내고 있다. 산등성이처럼 유연하면서도 기품 있게 서 있는 모습이 내 마음을 빼앗아간다.

예술의전당이라 쓰인 글씨가 오늘따라 더없이 선명하다. 대공연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내려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웅장함과 안정감 있는 볼륨으로 곡선의 멋을 살린 배흘림기둥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에 다가가 본다. 맨얼굴에 살포시 화장을 드리운 새색시의 볼처럼 황홀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대공연장 앞에 서니, 정면 우측에는 우암산을 배경으로 화려한 단청 속에서 단아함을 뽐내고 있는 천년대종이 눈에 들어온다. 21세기 새천년을 우리 손으로 열어가기 위한 기상을 담아 청동 21톤으로 만들었다는 대종의 울림이 "둥~ 둥" 힘차게 들려오는 듯하다. 좌측으로 눈길을 돌리니 직지교 앞에서 불을 뿜어내는 용의 모습이 보인다. 국보 제41호인 성안길에 있는 용두사지 철당간의 모습을 복원한 철당간의 용두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하늘의 달빛과 용에서 뿜어내는 불빛이 비춰주는 직지교를 거닐면 어떤 감흥으로 다가올까. 선녀가 된 기분일까. 구름 속에서 노니는 선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옆으로 눈길을 주니 커다란 고서가 엎어져 펼쳐져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는 "직지 파빌리온"이다. 가야금을 뜯으며 노래하고 춤추며 노니다가, 시 한수 읽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로 한국 근대 사학의 기초를 확립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고즈넉함 속에서도 달빛에 물든 소나무가 신채호 선생의 기개(氣槪)를 말해 주 듯 푸르르다. 새천년을 향해 염원하는 기운이 나를 향해 다가와 온 몸을 감싸는 듯하다. 황홀하다 못해 벅차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느끼며 무아지경에 빠져 든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의 우아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천천히 전당 주변을 걸어본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하나하나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자리한 것들 중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곳곳에 위치한 것들 모두가 뜻을 담아 나온 작품인 것을.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왔다. 일 년 내내 예술의전당장에서는 청중을 사로잡는 향연이 펼쳐진다. 때로는 웅장한 교향악과 부드러운 하모니로, 때로는 신명 나는 흥겨운 리듬과 절제된 춤사위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많은 예술인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는다. 오늘도 소공연장에서는 시한부 삶을 사는 어머니와 그런 엄마를 방관했던 두 딸의 절규하는 모습을 그린 연극이 관객들의 눈을 발갛게 했다. 기쁨과 슬픔을 오가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혼신을 다한 열정으로 꽃 피우는 공연은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하고 힘을 갖게 하고 꿈을 키우게 한다. 예술의전당 전시실에서는 나의 눈을 호강시키고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암산을 가려면 건너야 하는 무심천은, 이곳 예술의전당에서 흘려보내는 예술혼으로 넘쳐 한시도 마르지 않으리라. 예술의전당은 곳곳에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는 곡식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매일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곳간들은 나를 기다리고 내 친구를 기다리며 이웃을 반갑게 맞이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인적이 끊긴 가을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하다.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조용히 눈을 감는다. '무릉도원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야. 지금 네가 있는 곳이 천국이야'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눈을 뜨고 살포시 바라보니 이곳이 내게는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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