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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균

충북도교육청 서기관·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 연수파견

계절마다 그 계절이 내는 소리가 있다. 입추와 말복도 지나 이제 처서다. 아침과 저녁으로 가을소리가 더 가깝게 들린다. 옛 시인들은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소리를 가을소리라고 했다. 가을엔 가을의 소리가 있다. 갈대밭과 억새밭, 낙엽들이 구르는 소리도 가을소리의 대명사지만 베짱이, 방울벌레, 여치, 메뚜기나 귀뚜라미 같은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들이 내는 가을소리는 묘한 선율을 타고 우리들 귀를 통해 머리가 아닌 가슴속을 파고든다. 귀뚜라미는 잡식성이라 도심의 아파트 정원이나 집 마당에도 살지만 벼를 먹고 사는 베짱이는 산골 논이나 억새가 우거진 수풀까지는 나가야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방울벌레는 마치 방울이 굴러가는 듯 '띠링, 띠링, 띠링' 청아한 소리를 낸다. 방울벌레가 날개를 올리면 고음이 나고 내리면 저음이 난다. 베짱이와 여치는'치이, 치이, 치이'소리가 서로 비슷하다. 베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지금은 듣기 힘든 베짜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었다고 한다. 1930년대 서울에서는 가을이 오면 베짱이 장사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베짱이를 파는 베짱이 장사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베짱이를 방안 장롱 안에 놓고 그 소리를 즐겼다고 한다. 농안의 베짱이가 먼저 가을소리를 연주하면 마당 풀섶의 벌레들도 그에 맞춰 가을 합주를 한다고 한다. 베짱이를 산 주인은 방안에서 눈을 턱 감고 가을 달빛아래서 자연의 교향곡을 감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기계로 재생된 음악에 귀가 찌들은 현대인들이 그 운치를 가늠하기도 어렵고 알 수도 없다. 가을 전령사들의 소리는 가을이 깊어질수록 구슬퍼지는데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엔 더욱더 애처로운 느낌까지 들 정도다. 풀벌레들이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낼까? 곤충들도 가을이 가는 걸 슬퍼하는 걸까? 나는 그렇게 들린다. 생물학자들은 슬퍼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실 곤충들은 슬플 수가 없을 것이다. 수컷들이 암컷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 짝짓기를 하려는 유혹의 소리가 어찌 슬프겠는가? 가을벌레의 소리는 수컷의 청혼가다. 특정한 상대를 점찍고서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아니라 불특정 같은 종의 다수에게 열렬히 구애하는 소리다. 봄과 한여름, 애벌레로 지내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다가 어른이 되자마자 혼신의 힘을 다해 청혼가를 부르는 것이다. 이들이 짧은 가을동안 결혼하지 못하면 자신의 혈육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운명이다. 풀벌레는 성대가 없는데 어떻게 소리를 낼까 싶지만 꼭 입으로만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입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멋진 소리를 낼 수 있다. 메뚜기는 뒷다리로 앞날개를 비비고, 여치와 귀뚜라미는 앞날개끼리 마찰을 시켜 소리를 낸다. 귀뚜라미 날개를 자세히 보면 좌우 날개 아랫면에 좀 거친 부분이 있는데 이걸 바이올린을 켜듯 비벼 소리를 낸다. 그러니까 이 가을을 알리는 소리는'성악'이 아니라 '연주'다. 이들이 멋진 소리만 내서 짝짓기를 통한 종의 보전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선택자인 암컷들의 마음에 들어 대상자로 선정될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수컷들은 최선을 다해 훌륭한 연주 실력을 뽐내야 한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최선을 다한다고 노력한 만큼의 보답을 받는 게 아니다. 반대로 최선을 다할수록 위험과 곤경에 처해질 수도 있다. 어디서나 그렇듯 기회는 혼자 오지 않고 위험과 같이 오는 까닭이다. 멋진 연주가 포식자의 귀에도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주를 중단할 수 없다. 위험에 굴복하고 연주를 중단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가 없고 멸종된다. 그러니 이들이 최선을 다하여 연주하는 가을소리는 어찌 될지 모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거는 일생일대의 숙명적인 일이다. 풀벌레들은 가을이 끝나갈수록 더욱더 애처롭게 운다. 짝을 찾지 못해서 그런 걸까? 사실 더해가는 애처로움은 의도적인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섭리다. 곤충은 변온동물이라 기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한다. 날씨가 따뜻하면 체온을 쉽게 올릴 수 있어 크고 멋진 소리를 낼 수 있지만, 반대로 기온이 내려가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소리 내기가 어렵고 힘들어진다. 아직 일생의 과업을 완수하지 못한 녀석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가용한 모든 힘을 다해 소리를 내보지만 굳은 몸에서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올 리 없다. 이 힘겨운 소리가 우리 귀에도 애처롭게 들리는 것이다. 가을이 가득하고 깊어질수록 풀벌레들의 구슬퍼지는 소리는 이런 이유로 북쪽에서 시작되어 점점 남쪽으로 내려간다. 같은 지역이라도 그늘진 곳보다 햇빛이 있는 곳에서 나는 소리가 더 크고 낭랑하게 들린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이들의 소리를 '가난한 사람들의 온도계'라고 한다. 변온동물인 이들이 온도에 민감함을 절묘하게 비유한 것이다. 이제 기온이 더 내려가고 날씨가 추워지면 애처롭기 그지없던 가을소리마저 사라질 것이다. 1년이 다 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에겐 1년이지만 풀벌레들에겐 일생이다. 가을소리는 그래서 더 슬프다. 가을 소리는 이별의 소리이자 재회를 약속하는 희망의 소리다. 우리는 이 가을이 다가기 전에 풀벌레들의 일생일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가을소리를 예의를 다해 경청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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