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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북도 중앙도서관장

"이거 얼마예요?" "몰라요. 헝아가 와야 되여."

신년 벽두에 산 속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내려오다가, 꽁꽁 언 저수지 둑에서 사과를 팔고 있는 어눌한 중년을 만났다. 왜소한 체구에 옷마저 툭툭하지 않아 '성냥팔이 소녀'를 보는 듯했다. 배달을 간 형이 와야 한다며 자기는 값을 모른다고 했다.

다음에 오겠다는 우리에게 사과 하나를 건네고는 "끝내저여! 끝내저여!"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저기 올라오는 작은 차 아닌가요?" 앞서 내려가던 아내가 발길을 돌린다.

"헝아다, 헝아!" 몸도 마음도 약한 것 같은 남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동생분 때문에 사게 되네요. 동생이 형님을 어찌나 애타게 기다리는지…."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초췌한 형은 연신 고맙다며 몇 개의 덤과 함께 사과 1박스를 집까지 배달해 주겠다고 했다. "옛날에 서로 볏단을 옮기던 '의좋은 형제'가 생각나네요. 호랑이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네요."

코로나19로 무기한 휴장을 했던 청주랜드동물원이 재개장해 다행히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 정초에 호랑이를 만나고 그 직찍을 지인들께 보내드리는 기쁨까지 누렸다.

세 놈의 시베리아 호랑이 중 한 녀석은 우리에서 나와 어슬렁거리다 바위에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크게 하품을 하기도 하는 등 온갖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런웨이를 워킹하는 모델처럼 펜스 가까이를 천천히 돌기도 했다. 88 서울올림픽 때의 호돌이가 대호가 되어 돌아와 아낌없는 팬서비스를 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프루스텐' 소리까지 내어 나를 들뜨게 했다.프루스텐은 호랑이가 내는 조용한, 다정함과 해를 끼칠 의도가 없음을 나타내는 콧바람 같은 소리로 얀마텔의 '파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이다. 파이 이야기는 인도 동물원 사육사의 열여섯 살 난 아들 파이가 뱅골 호랑이와 함께 구명보트를 타고 227일 동안 표류한 이야기다.

스타 호랑이 덕에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의 고사성어가 생각났다. 검은 호랑이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도의 정글에만 예닐곱 마리 살고 있다고 한다. 최소 12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랑이 뼈가 두루봉동굴유적(청주시 문의면 노현리)서 발견된 것은 물론, 호랑이 얘기가 유난히 많은 우리나라를 육당 최남선은 '호담국(虎談國)'이라 칭하기까지 했다.

강인함의 상징인 호랑이도 우리 토종개인 삽살개 앞에서는 어흥이(어린아이들이 호랑이를 이르는 말)가 됐나 보다. 조선 후기 학자 김창흡의 '오대산기'에 '황계역에서 호랑이가 삽살개에 쫓겨 가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다'란 구절이 나오는데, 조선 전기 문신 김안로의 '용천담적기'에 '삽살개는 저승에 끌려간 사람의 영혼을 다시 이승으로 안내해주는 역할도 맡았다'는 내용을 보면 과장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충남 예산에는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해도 그치지 않던 아기가 "이리 온!"하는 엄마의 젖물림에 울음을 그치자 '이리 온'이란 놈이 자기보다 무서운 놈이라 생각하고 달아난 '호랑이와 간사한 여우'의 이야기와, 호랑이를 만난 효자가 아버지의 제사를 먼저 지내고 오게 해 달라고 사정한 뒤 호랑이와의 약속을 지키자 감동하여 효자를 살려 주었다는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또한 박지원의 소설 '호질'속 호랑이는 과부와 정을 나누다 들켜 달아나다가 똥구렁에 빠진 선비의 위선과 가식을 호되게 꾸짖는다. 옛사람들은 범에게 잡아먹히고도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범을 인도한다는 못된 귀신을 창귀(倀鬼)라 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는 '예기'의 글마따나, 여우와 창귀 같은 내로남불 정치는 호환마마보다도 코로나보다도 무서운 법이리라.

산천을 울리는 호랑이의 포효(咆哮)처럼 가슴이 뻥 뚫리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형제네 사과 맛은 정말로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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