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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6.16 16:37:38
  • 최종수정2020.06.16 16:37:38

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6월 중순인데도 때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세상사 기승전결이니 이 더위도 곧 결딴이 나겠지만 코로나19와 싸우느라 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하는 마당에 더위까지 겹치니 야속한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숲속 그늘진 길 마저도 화산에 오르는 길처럼 바싹 말라 흙먼지가 폴폴나고, 기세좋던 담쟁이 덩굴도 오름을 멈추고 헉헉거린다.

조선 정조 때, 가뭄에 애타는 백성들을 위해 상원사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던 연풍 현감 단원 김홍도의 간절함이 이러했으리라.

다행히 어젯밤에는 천둥번개를 떨쳐낸 고마운 굵은비가 밤새 내려왔다. 어린 시절 마당에 나가 입벌리고 팔벌리고 양동이 속 잉어처럼 펄쩍이며 좋아라 비를 맞던 추억이 떠올랐다. 베란다 창에 맞닿게 이부자리를 펴고 비가 들이치지 않을만큼 양쪽 창문을 연 다음 불을 끄고 누우니, 유리가 깨져라 사정없이 후려치는 큼지막한 빗방울 소리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렸다.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빗소리는 불어난 계곡물이 휘돌아 흐르는 소리를 냈다.

인조반정 때 광혜군의 폐위를 논하며 칼을 씻었다는 세검정(洗劍亭)의 세찬 물소리가 그러했으리라. 호우(好雨)의 백색소음 속에 단잠을 이루고 새벽에 눈을 뜨니 머리맡 방충망에 꿀벌이 날아와 매달려 있다. 저놈도 단비 후의 새 꽃과 새 꿀이 기대되어 일찍 일어났나보다.

꿀벌을 앞세우고 아침 일찍 숲을 찾았다.

비 온 뒤 숲속의 아침은 청정(淸淨)이다. 풀잎, 나뭇잎, 거미줄에 맺힌 아침 이슬은 영롱하다.

초록의 잎새에 앉았던 물방울들은 에머럴드 쟁반에서 옥구술이 구르듯, 아기천사들이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듯 또르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달팽이도 풀숲에서 나와 좁은 길 한복판에 앉아있다. 혹여나 밟힐까 걱정되어 나뭇잎을 따 한옆으로 밀었더니 온몸을 비비꼬면서 거품을 물고 점액을 분비한다.

"아서라, 팽이야. 나도 너와같은 동물계인데 설마 너를 해치기야 하겠니?"

간밤의 비에 축축히 젖은 나무 그루터기에는 회색깔대기버섯이 함초롬이 피어났다.

죽은 참나무에 다리가 여섯 개 달린 풍뎅이 닮은 벌레가 붙어있다.

'꿈에 달팽이가 기어가면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다'는 속신이 생각나, 조금 전에 만났던 달팽이의 행운을 기대하며 혹시

장수하늘소(천연기념물 제218호)가 아닐까 하고 다가가 봤더니 우리나라에 8천여 종이나 있다는 딱정벌레다.

광릉(국립수목원)과 춘천에만 있다는 장수하늘소가 청주에서도 발견된다면 재미있는 뉴스거리일텐데…

숲에서도 욕심을 부리냐며 모기가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하루 저녁에 수천 마리의 모기를 잡아먹는다는 박쥐가 근처에 한 마리만 있었더라도 이놈의 모기들이 얼씬도 못했을텐데…

숲속 교향악단의 연주가 한창이다. 밤새 빗물에 몸을 깨끗이 씻은 수컷 새들의 자신만만한 구애 소리다. 휘리릭 휘리릭 휘파람새 소리, 뻑 뻑 뻑 벙어리뻐꾸기 소리, 찌직 찌직 할미새 소리, 지지배배 지지배배 종달새 소리…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요즘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극성을 부릴 때 새들의 '일정한 거리두기'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새들은 불필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싸움을 미연에 방지하고, 더 효율적으로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무리를 지어 있는 경우에도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둔다.

몇 달 전부터 매일같이 숲을 찾는다. 엊그제는 숲에서 고라니가 아닌 귀한 노루를 만났었다. 가뭄에 목이 말라 산에서 내려왔으리라.

숲에서 부스럭대는 것은 노루, 고라니, 토끼, 다람쥐, 청설모 들이고, 바스락대는 것은 뱀, 도마뱀, 작은 새 들이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언제부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숲속의 곤충과 동물들이 전처럼 쉽게 달아나지도 않는다.

어떤 놈들은 "어머, 털없는 원숭이잖아?" 하듯 빤히 쳐다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듯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우리도 숲에서는 느릿느릿한다. 숲에서 보이는 것은 모두가 사랑스럽다. 사랑은 관심이다.

무심(無心)하면 안 보이고 유심(有心)하면 다 보이는 법이다. 아는만큼 보이고 좋은만큼 가까워진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알면 사랑한다."는 것이다. 촉촉히 젖은 나무를 두손으로 감싸고 귀를 대어보니 땅속의 물을 가지 끝까지 끌어올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노란 금계국과 연보라 개망초의 군락 속에 들국화를 닮은 하얀 샤스타데이지 한 송이가 외로이 피어났다.

70년 전, 포성이 아스라이 들리는 6월의 어느 전선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스러져간 소년 병사를 그려본다.

저 꽃의 꽃말이 '평화'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들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한다.

노화(老化:늙다)되어 싫다고 했건만, 늙은 꽃(老花)도 꽃이라며 굳이 셔터를 누른다.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

<동물농장>,<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이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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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