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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북도 중앙도서관장

네 시간 가까이를 달려 도착한

강릉의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왕복 6km의 해안단구 힐링 탐방로를 두 시간 걷고,

도로변 포장마차식 횟집에서 가자미회덮밥으로 점을 찍고, 평창으로 가기 위해 456번 지방도를 타고 대관령 고갯길을 올랐다.

오늘이 10월 21일.

청주의 단풍은 이제야 불긋불긋 물들기 시작했는데

이곳은 제법 울긋불긋 알록달록하다.

대관령의 다른 명칭은 대굴령이다.

옛날에 화전민이 눈이 오면 대굴대굴 크게 굴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억의 길이 된 대관령 고갯길을 넘을 때는, 단풍철에도 겨울만큼이나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좌고우면하느라 어깨에 힘이 들어갈 즈음 대관령박물관이 나타났다.

고미술품 수집과 연구에 힘쓴 홍귀숙 선생이, 고인돌 형상으로 지은 박물관과 2,000여 점의 유물을 강릉시에 기증한, 산중의 작고 아름다운 박물관이다

관람 동선이 돌담 골목길처럼 편하고 정스럽게 꾸며졌다.

"단풍하면 오대산 진고개지요.

단풍은 위에서 아래로 물드니, 경사가 완만한 평창 쪽으로 내려가면서 보면 좋을겁니다.

올해 단풍은 좀 늦네요.

우리 손주 놈처럼 아장아장 걸어서 내려와요"

고갯마루 아래서 만난 산지기 양반의 친절이 감자찌개처럼 달짝지근하다.

"대굴령 늠다보니 고뱅이(무릎)가 아파요.

오대산과 방태산 단풍은 작년에 보았으니 진고개 단풍은 내년에 와서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설픈 사투리로 너스레를 떨었더니,

"지가 강릉사람 이래요"

빙긋이 웃으며 거친 두 손을 흔드신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단풍의 시작 시기가 늦어지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청주에도 숨겨진 단풍 명소가 있다.

상당산성 안에 옛 다랭이 논을 활용해 조성한 자연마당이 있고 그 한쪽에 기와집이 한 채 있다.

집 뒤 오솔길로 접어들면, 강진 다산초당 올라가는

'뿌리의 길'처럼, 단풍나무 뿌리들이 양쪽에서 서로 손을 맞잡듯이 땅위로 뻗어있다.

모든 식물은 뿌리를 통해 물과 무기질을 흡수하는데, 동물은 알맞은 환경을 찾아서 능동적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식물(나무)은 한곳에 정착하여 자라기 때문에 환경에 대한 선택성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뿌리들의 숨소리가 색색 들리는 듯하다.

언덕에 수령이 100년에 가깝거나 넘어서는 100여 그루의 단풍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사실 이곳은 조선시대 어느 고관대작의 묘가 있던 자리다.

언덕 밑에는 지금도 후손의 묘가 있다.

얼마 전에 외국인 부부가 상석에다 식탁보를 깔아 음식을 차려놓고, 남편은 제절에 담요를 펴고 누워 음악을 듣고, 부인은 파라솔을 치고 앉아 책을 보며 묘지에서의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숲속의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여기 단풍나무들은 생김새가 예스럽다.

청주 땅에서 자란 나무는 청주 사람을 닮는가 보다.

단아하고 빛도 고운 것이 충청도 선비를 연상시킨다.

곱게 늙은, 화롯불가의 인자하신 할머니 같기도 하다.

단풍 숲에 들어가 있으면 고색창연한 산사에 묻힌듯하다.

단풍나무 아래서 파란 하늘을 보면 슬며시 행복해진다.

높다란 나무 사이로 부챗살처럼 퍼지는 햇살 꽃이 쏟아진다.

'수레 세우고 앉아 늦은 단풍 숲을 즐기나니/서리 맞은 잎이 이월의 꽃보다 붉구나'

ㅡ당나라 시인 두목의 '산행'에서.

반쯤 핀 꽃이 예쁘듯이 단풍도 반쯤 내려왔을 때가 여인의 홍조처럼 아름답다.

단풍 속 새소리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새들이 붉은색과 주황색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다/문득 그가 보고 싶을 적엔/단풍나무 아래로 오세요'

ㅡ이해인의 시 '단풍나무 아래서'에서.

단풍의 성(城) 아래에는 때맞춰 억새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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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