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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청주에서 4시간여의 지루한 운전 끝에 도착한 곳이 강원도 양구 펀치볼에 있는, 간밤에 잠까지 설치게 했던 '국립수목원 DMZ자생식물원'이다.

60년이 넘도록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DMZ 일원의 희귀식물과 특산식물 그리고 북방계식물을 만난다는 설렘과 함께, 며칠 전 통화했던 친절하고 정이 듬뿍 느껴지는 강원도 여직원을 만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있는 펀치볼은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로 여의도의 6배가 넘는 넓은 곳이다.

삥 둘러싼 800~1천300m의 주변 산들보다 400~800m 아래에 있는 드넓은 분지를 보고 당시 외국 종군 기자가 'Punch Bowl(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했다는데, 식물원에서 내려다본 펀치볼마을은 '우묵한 마음의 고향', 넓디넓은 축복의 땅이었다.

전시원에 있는 '백두산떡쑥'을 두 손으로 떠서 집에 가져가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박수근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잡초 무성한 군부대 터가 보였다.

옮겨갔으리라 애써 자위하면서도, '남북군사합의' 등으로 없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사망자는 25만여 명이었지만, 6·25전쟁 사망자는 적어도 240만 명 이상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져 오며 마오쩌뚱이 한 말이 생각났다.

"고작 260명 유생(儒生)을 죽인 진시황이 무슨 큰 잘못이란 말인가?"

그는 역사를 거꾸로 뒤집어서 교묘한 음모의 통치술을 연마했던 공산주의자였다.

조선시대 양구 현감을 지낸 송구빈이 "고을이 고요하니 마음마저 고요하고 사람이 드무니 할 일도 드무네"라고 말한 곳, '양구에 오시면 10년 젊어진다'는 양구읍에,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박수근미술관'이 있다.

사명산 자락 아래 화가의 생가터에 2002년 군립 미술관이 세워졌다.

미술관 뒤에는 무릎을 접은 채 두 손을 맞잡은 서민화가가 앉아 있고, 동상 왼편 개울에는 그의 작품 <빨래터>를 연상시키는 빨래터가 재현돼 있다.

개울 뒤로는 홍라희 여사의 제안으로 조성된 자작나무 숲이 무성하다.

지난 4월 어느 봄날 '아기 업은 소녀'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자작나무 꽃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건희 컬렉션 중 박수근의 유화 4점과 드로잉 14점이 기증된 것이다.

'일전에 어머님 점심을 가지고 빨래터에 갔을 때, 빨래하고 있는 당신을 본 후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파렛트 밖에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승락하셔서 나와 결혼해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아내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박수근이 김복순에게 수군수군 이야기하듯 써 보낸 청혼의 편지다.

미술관 뒤편 산등성이에 있는 내외의 묘소를 찾아 <이파네마의 소녀>를 바쳤다.

이 곡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리우데자네이루 남쪽 이파네마 해변 근처 카페에서 한 소녀를 보고 지은 것이다.

'봐라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난번 서귀포에서 이중섭미술관을 들르지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이번 세기(世紀)의 기증 '이건희 컬렉션' 2만3천여 점 중에, 이중섭이 6·25전쟁 때 남으로 피란 왔던 제주도 시절을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중섭미술관)'과 '피란민과 첫눈(국립현대미술관)'도 있다고 하니 잊지 않고 봐야겠다.

이번 달이 호국보훈의 달임에도 저녁 6시 뉴스는 내로남불, 자기합리화의 달인인 이 시대의 비렁뱅이들 이야기로 여전히 시끄럽다.

만감의 교차 때문인지 돌아오는 길은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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