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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봄비가 부슬부슬 촉촉이 내리는 춘분 날 근처 이정골로 진달래꽃을 따러 갔습니다.

어릴 적 봄날에 학교 갔다 와 배고프면 진달래가 지천인 뒷산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따 먹었습니다.

노루처럼 이리저리 산을 타다 목이 마르면 가랑잎에 숨겨진 작은 옹달샘을 찾았구요.

귀여운 꽃수염(꽃술)은 떼고 먹어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 안 들은 녀석들은 그날 밤 배앓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진달래꽃 100g에는 탄수화물ㆍ단백질ㆍ나트륨 등 26Kcal의 영양성분이 들어있으니 춘궁기 시골 아이들의 요깃거리로는 꽤 괜찮았던 거지요.

봄이 되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잎보다 앞서 꽃을 피우며 산을 온통 진분홍으로 물들이는 한국의 꽃 진달래.

진달래 하면 북의 소월(素月), 남의 지용(芝溶)이지요.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김소월의 '진달래꽃' 중에서)

'~진달래 꽃 사태를 만나/나는 만신(萬身)을 붉히고 서다. ~'

(정지용의 '진달래' 중에서)

소월의 시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영변 약산동대 서쪽 4km에는 북한의 영변 핵 단지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근무했던 소설가 김대호에 따르면 영변 약산에는 진달래꽃이 더이상 피지 않는다고 하네요.

<영변 아리랑>에는 이런 대목도 있는데 말입니다.

'약산으로 올라갈 때 오빠 동생 하더니/약산에서 내려올 때 여보 당신 하더라'

이규태는 칼럼 <연달래와 난달래>(1992.4.4)에서 진달래의 이름풀이를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하얀 빛 도는 연한 진달래를 연달래라 하고 자줏 빛 도는 진한 진달래를 난달래라고 하는데, 연하고 진한 진달래빛이 처녀들의 젖꼭지 빛깔을 빗대고 있어 어릴 적 이 꽃이름을 부르면서 처녀들을 놀려댔다.

곧 앳된 처녀의 별명이 연달래, 숙성한 처녀가 진달래, 과년한 처녀가 난달래이기에 "난달래!" 하면 젖꼭지가 새까만 노처녀란 뜻이 되는 것이다."

사정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진달래가 질 즈음엔 철쭉이 피어나고 철쭉이 질 즈음에는 영산홍이 만발하는데, 이 중에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독이 없는 참꽃인 진달래꽃 뿐입니다.

진달래와 철쭉꽃은 한국민속식물이지만 영산홍의 원산지는 일본입니다.

세종 때의 명신 강희안이 쓴 원예서 《양화소록》의 기록, "우리 주상 전하께옵서 왕위에 오르신지 23년이 되던(1441년) 봄에 일본국에서 철쭉 두어 분을 공물로 보내 오니 주상께서 명하시어 대궐 안 뜰에 심게 하셨다."에 따르면 영산홍이 들어온 지 580년이 됐군요.

산을 붉게 비춘다는 영산홍(映山紅)이 연산홍(燕山紅)이란 별칭을 얻게 된 사연도 재미있습니다.

1504년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간 갑자사화를 벌인 연산군은, 다음 해 1월 26에 "영산홍 1만 그루를 후원(後苑)에 심으라" 명했고, 그다음 해인 1506년 3월에는, 장의문 밖에 영산홍을 잔뜩 심은 탕춘대(蕩春臺)를 지어 무희들과 방탕하다가 꽃이 다 떨어진 9월 초하룻날 중종반정으로 폐왕이 되었습니다.

"꽃(영산홍)은 본래 일본에서 왔다. 연산군이 사람을 보내 배에 실어오게 했는데 돌아와 호남의 좌해에 이르렀다. 연산군이 이미 폐해졌으나 호남 사람들은 이로 인하여 많이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또 연산홍(燕山紅)이라고 한다."

(여암 신경준의 《순원화훼잡설》 중에서)

요즘 관공서나 공원 등에 빽빽하게 모아심기를 하여 영산홍 군락을 만드는 방식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산홍은 꽃이 필 때는 그 화려함이 다른 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지만, 꽃이 시들 때는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말라붙은 채 오래갑니다.

그래서 시든 후에는 영산홍보다 더 추한 꼴이 없지요.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했건만, 권력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는 소인배들과 같다고나 할까요.

요임금 시절 한 노인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노라.

내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내 밭을 갈아서 밥을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산에 불이 붙는 것 같이(滿山紅如火) 진달래가 활짝 피었습니다.

아, 사랑하는 임이시여!

이제 그만 아프시오.

진달래 꽃방망이를 두드리며 이 글을 보내오니 감로(甘露) 드시듯 가슴을 축이시고 벌떡 일어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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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임용환 충북경찰청장

[충북일보] 자치경찰제 시행·국가수사본부 창설 등 경찰개혁이 가속화하고 있다. 경찰조직은 변화의 기로에 놓였다. 현재 충북지역에서는 자치경찰제 시행을 앞두고 다소 시끄러운 모양새다. 경찰개혁 원년을 맞아 고향에서 충북경찰의 수장을 맡고 있는 임용환(57·경찰대 3기) 충북경찰청장을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고향으로 금의환향한 지 8개월여가 흘렀다. 소회는. -도민들께서 집중호우로 어려움을 겪을 때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으로 부임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취임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경찰생활을 시작한 충북에서 치안책임자로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명감과 책임감도 많이 느낀다. 충북은 현재 여러 지표상 안정적 치안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체감안전도 조사와 치안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역대 최고점을 기록했다. 외부청렴도 조사에서도 전국 시·도경찰청 중 1위를 달성했다. 높은 질서의식을 바탕으로 경찰활동에 적극 협조해주는 도민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치안책임자로서 늘 감사하다. ◇직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디까지 외웠고, 이유는. -동료직원들과 소중한 인연을 기억하기 위해 이름을 외우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