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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산28-1 상당산성. 우리집 주소다.

옛날 장수들의 지휘소였던 서장대 성벽 아래 양지바른 길섶에서 아버지 므은드레님, 어머니 안즌방이님, 여동생 하민이와 함께 살고있다.

그리고 친구 봉봉달이와 그의 여동생 봉봉지가 거의 매일 찾아온다.

유유히 흐르는 무심천(無心川)을 안은 청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비행장이 잘 보이는, 그야말로 뷰가 끝내주는 곳이다.

나는 토종 민들레 민토민이고 동생은 하얀 민들레 민하민이다.

봉달이와 봉지는 숲속에 사는 꿀벌 친구들,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소식통이다.

우리 조상은 원래 산성 아래 청주읍성에 살았는데, 조선 영조 4년(1728년) 이인좌의 난 때 함락됐던 상당산성을 되찾기 위해 일어선 의병들을 따라 올라와 새로운 터를 잡게 되었다.

조상님들이 떠난 청주읍성에는 1910년에 일본을 통해 유럽산 서양민들레들이 들어와 정착을 했다.

노란 얼굴을 한 그들은 자가수정으로 무섭게 세력을 확장하여 전국을 장악함으로써 귀화식물의 위치에까지 오르고 말았다.

백의민족 꽃답게 하얀 얼굴의 우리 토종들은 그나마 자존심을 잃지 않고 한적한 곳에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시도 때도 없이 꽃을 피우는 서양애들과는 달리 우리 토종들은 봄에만 핀다.

의병정신처럼 우리는 아무리 짓밟혀도 끝내 꽃을 피운다. 그래서 예로부터 민초의 상징이 되었다.

'강인한 생명력'이 우리 집안의 가훈이다.

봉달이와 봉지는 우암산 중턱에 있는 굵고 늙은 참나무 안에 집을 짓고 산다. 봉달이와 같은 꿀벌을 잡아먹는 말벌이 나타나면, 수많은 꿀벌들이 합심하여 말벌 주위를 에워싸고 빙빙돌아 혼줄을 빼는 사이, 여럿의 특공대가 찰싹 달라붙어 말벌의 체온을 올려 죽게 만드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나무 안의 꿀 목청(木淸)이 산삼보다 좋다고 소문이 나자 심마니들처럼 목청을 따는 사람들이 산을 헤집고 다녀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한다.

목숨을 버리는 침쏘기로 대항하려 해도 최루가스 같은 쑥연기를 피우는 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단다.

봉달이가 이렇게 무섭고 분한 이야기를 할 때면 머리 위 두개의 더듬이를 곧추세우고, 튀어나온 주둥이로는 연신 무엇인가를 쪼아대며, 왕방울같은 겹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앞날개와 뒷날개를 파르르 떨면서, 똥구멍의 침을 뺏다 넣었다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다가도 하민이만 보면 갑자기 공중 제비돌기 재주를 부린다.

그런가하면 봉지는 나만보면 얼굴을 붉히면서도 앞다리, 가운데 다리, 뒷다리, 6개의 다리로 사각 다이아몬드 춤과 오각 별춤을 신나게 춘다.

봉달이와 봉지에게는 산아래 양봉 친구들이 많다. 양봉들은 주인 아저씨가 짜준 네모난 나무통 안에다 켜켜이 집을 짓고 산다.

아저씨에게는 비행기를 모는 군인 아들이 있는데, 어깨에 우리 민들레를 달고 있다는 것을 보면 편대장인 소령 아저씨가 맞다.

작년(2019년) 3월 29일에 편대장 아저씨가 미국에 가서 최신형 전투기 2대를 몰고 왔는데 그것이 바로 북한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초음속 스텔스 수직 이착륙 전투기 F-35란다. 2021년까지 60대가 청주공항에 배치될 계획이라 청주비행장이 북한 신형 미사일이나 방사포의 제1표적이 되었음에도, 이를 요격할 수 있는 패트리엇PCA-3 미사일을 작년 말에야 겨우 1개 포대를 배치했는데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청주시내는 물론 상당산성에도 떨어질텐데...'

우리 민들레 씨가 하늘 높이 올라가면 비행중인 조종사 아저씨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

우산살처럼 생긴 갓털에 매달려 날고있는 우리 모습이 마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특공대원 같다며 아저씨들이 손을 흔들어 주신다.

내 꿈은 서양민들레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가서 케이팝(K-Pop) 열풍처럼 케이플라워(K-Flower)의 선두주자가 되고, 아프리카에 가서 바오밥 나무를 만나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바다로 나가 성장하며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다니다가 3~4년 후에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다시 돌아오는 연어처럼 고향으로 돌아와 여기에 묻히는 것이다.

호국의 민들레가 된지 어느덧 300년이 돼 가고 나라가 독립된지도 75년이 지났건만, 우리땅 곳곳에 서양민들레가 득시글 할 뿐만 아니라 터줏대감 노릇까지 하고있으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시던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D-day를 5월 초순으로 잡았다.

우리가 가장 멀리 비행할 수 있는, 날이 따듯하고 건조하고 바람이 부는 날을 택해야 한다. 기상상태의 행운이 따라준다면 100km도 넘게 날아갈 수 있다.

내 꽃대에는 84개의 씨앗 친구들이 달려있다. 그 중에서 그동안 양분 섭취도 잘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갓털도 튼튼한 10명을 뽑았다.

여동생 하민이는 좋아하는 봉달이에게 부탁을 하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 봉지에게는 우리의 꽃말인 '내사랑 그대에게'를 불러주며 하루 종일 뽀뽀를 했다.

2020년 5월 5일, 드디어 출발이다!

며칠째 건조주의보가 내리고 바람도 맞춤이다. 우리는 불어오는 남풍을 타고 북으로 날았다. 첫 기착지는 104km 떨어진 수원화성이다.

힘이 부친 3명은 중간에 떨어지고 7명만이 수원화성 화성장대 아래 안착을 하여 쇠똥을 먹고 흙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한계가 100km 정도의 비행이라 땅속에 뿌리를 내려 내년 봄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

1년 동안 긴 잠을 자기 전에 계획을 다시한번 정리하기로 했다.

내년 봄에 다시 태어나 꽃을 피운 다음 갓털에 매달려 72km 떨어진 인천국제공항까지 가야한다.

그리고는 프랑스 파리로 보내는 화물에 붙어 대한항공 CARGO 비행기에 실려야 한다.

12시간 편승 비행 후에 파리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하면 다시 바람을 타고 파리 북부 제18구에 있는,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날아가 거기에 있는 사크레쾨르대성당 앞 잔디 언덕에 사뿐히 내려야 한다.

2021년 봄을 기다리며 나 민토민은 깊은 잠을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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