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7, 80년대 서울 사람들이 청주에서 왔다고 하면 민병산을 아느냐고 물었다 한다.

민병산은 서울에서는 유명인이었지만 청주에서는 무명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충북 제일의 부호 청주 민 부잣집 큰아들로 태어나, 소학교 때(현 주성초) 서울로 전학갔다가 다시 1950년대 말에 친구따라 서울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재산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철저한 무소유의 자유인으로서, 결혼도 않고 집도 직장도 구하지 않고 평생을 독서와 집필로 일관했던 그를, 사람들은 '거리의 철학자', '한국의 디오게네스(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했던)', '한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이라 칭했다.

책을 많이 읽었다는 이어령도 그의 앞에서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한다.

커피는 좋아하지만 술은 한 잔도 입에 대지 못하는 그의 환갑 잔치를 지인들이 '누님 칼국수'집에 준비했지만, 회갑일을 하루 앞두고 지병인 천식의 악화로 에누리없이 60년을 꽉 채우고(1928.9.20~1988.9.19) 월세 단칸방에서 환갑 총각으로 눈을 감았다.

그를 좋아하고 존경했던 시인 신동문, 천상병 등 지인들과 여인들이 밤새워 조문객을 받았고 시인 신경림은 만시(輓詩)를 써서 애도했다.

'준비했던 잔치 음식은 장례 음식이 되고/회갑 옷은 그대로 수의가 되었네'

그 민병산이 청주에 내려오면 아침 일찍 찾아가는 곳이 있었으니, 생전에 그가 그토록 의지하고 자랑했던 중앙공원의 '청주 압각수'였다.

'내 고향 한가운데는 천년 늙은 으능나무가 서 있다.

봄·여름·가을, 그리하여 가장 숭엄(崇嚴)한 경탄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잎을 떨고 서 있는 그 겨울 모습이다.

외롭고 적막하고 의연(毅然)한 모습, 적나라한 그 모습이다.

으능나무 앞에서는 어린이처럼 순진한 사람이 된다.'

(※압각수,으능나무=은행나무)

중앙공원 정문 앞으로는 남주동거리가 있다. 한국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1904~1933)가 청주에 있는 요릿집 장성관에 거금 50원에 팔려왔다는 기록이 있다.

남주동에는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요정이 있었으니 장성관도 중앙공원 근방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월화는 50원 중 30원은 동경 유학생인 애인 손에 쥐어주고 나머지 20원은 어머니에게 털어주었다고 한다. 장성관은 술 한 상에 20전짜리 색줏집이었는데 당시 서울 단성사 앞 최고급 색주가에서도 한 상에 40전씩 받았다고 전해진다.

서울 신극 여배우 월화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청주 거리가 술렁였다고 한다.

민병산이 좋아했던 으능나무 남쪽 십여 미터 지척지간에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1층 가운데에 대문을 달아 병영을 출입하도록 하였고, 2층은 우물마루(우물 정자井 형태)를 깔고 계자난간(닭의 다리 모양)을 설치하여 누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누각에 오르면 왼쪽으로 천년의 은행나무가 손에 잡힐 듯 하고 앞으로는 우암산과 상당산성이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1792년(정조 17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9월 어느날 영문 누각에서 서원아집(西原雅集)이 열렸다.

충청도의 군사 업무를 주관하는 병마절도사(종2품)로 부임한 이광섭이 연풍현감 김홍도, 연기현감(종6품) 황운조, 이한진을 초청하여 모임을 가진 것이다.

서원(西原)은 청주의 신라 때 이름 서원경(西原京)에서 따온 것이고 아집(=아회雅會)은 조촐한 모임을 뜻하는 것이니 서원아집은 청주에서의 풍류 모임이었다.

이광섭은 전서와 양금에 능했고, 김홍도는 정조가 아끼는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였으며, 황운조는 해서의 대가요, 이한진은 전서의 대가에다 퉁소도 잘 불었다고 한다.

병사 이광섭이 다들 술 취하게 하려고 큰 잔으로 술을 돌렸음에도, 가장 나이가 많은 황운조(62세)가 밤에 불을 밝히고 연기현으로 갔다는 기록을 보면 그의 술이 제일 셌던 것 같다.

서원아집(西原雅集)에 참석했던 대가들이 그날 남긴 작품이 있으면 참으로 좋으련만 아쉽게도 찾을 수가 없다.

김홍도가 그린 서원아집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西原雅集圖가 아닌 西園雅集圖로 1778년에 그린 것이다.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압각수 옆에 있는 '목사김효성청백선정비'다.

김효성(1585~1651)은 청안현감, 괴산현감, 공주목사 등을 거쳐 청주목사로 근무했는데, 의금부사도 지낸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청빈한 목민관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전해진다.

공주 공산성에도 그의 선정비가 있는 것을 보면 사실인 것 같다.

아프리카 나미브사막에는 살아서 300년,

죽어서 600년을 버티고 서 있는 낙타가시나무가 있다.

워낙 뿌리가 깊고 든든하여 죽어서도 사막 한가운데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것이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사람이고 나라고 기본이 튼실하면 번영하는 법이다.

천년을 살아온 겨울의 '청주 압각수'는

장엄(莊嚴)하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