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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아버지는 소달구지를 끌고 냇가에 나가 각지고 평평한 돌을 실어 오셨다.

앞마당 햇볕이 잘 드는 곳, 2평정도 넓이에 1자(30cm) 높이로 반듯하게 쌓은 다음, 내가 냇물에서 미역을 감고 돌아올 때마다 주워온 동글동글한 하얀 자갈로 사이사이를 채우고 나니, 어머니가 그리도 고대하시던 새로운 장독대가 멋지게 완성되었다.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제일 좋은 항아리에 담겨져 내려오는 씨간장은 장독대의 정중앙에 신줏단지처럼 모셔졌다.

어머니는 장독대를 뺑 둘러 채송화와 봉선화 꽃씨를 뿌렸고, 인접한 담장 밑에는 향긋한 냄새가 일품인 더덕을 심으셨다.

장독이 깨끗해야 장맛이 좋고 장맛이 좋아야 복이 들어온다며 겨를이 있을 때마다 쇠솥을 닦듯 장독을 닦으셨다.

그리고 볕이 좋은 날은 소독도 되고 간도 맞추기 위해 하루 종일 장독 뚜껑을 열어 놓으셨다.

간장을 새로 담그고 나면 항아리에 새 옷을 입히듯이 장독의 윗부분에 금줄을 둘렀다.

아버지가 꼰 왠 새끼줄에다 검은 숯과 빨간 고추, 푸른 솔잎을 듬성듬성 꽂은 금줄은 장맛이 좋고 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애틋한 정성이었다.

음력 4월이 되어 봉선화가 하늘하늘하면 봉숭아물들이기를 했다.

꽃과 함께 잎사귀와 백반을 조금 넣고 찧어서 손톱에 붙인 뒤 헝겊으로 싸고 실로 총총 감아두었다가, 하룻밤을 만세부르며 조심스레 자고 난 다음날 풀어보면 붉은 봉선화 빛깔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다.

엄마가 물들여준 봉숭아 손톱은 보면 볼수록 예쁘고 신기했다.

식구들 중 누군가 한여름에 더위를 먹어 입맛을 잃으면 어머니는 익모초를 베어다 약절구에 찧어 즙을 낸 후 장독대에서 아침이슬을 맞힌 다음 주셨는데, 그 맛이 너무도 써서 엄지와 검지로 코를 잡고 머리를 젖혀 단번에 마셔야만 했다.

겨울에는 놋그릇에다 당원(인공 감미료)을 푼 물을 장독대에 올려놓고 밤새 꽁꽁 얼려 아이스케이크를 만들어 주셨다.

장독대는 어머니의 보물창고였다.

가을에 조금 덜 익은 고욤을 따서 항아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겨울이 되면 토종 벌꿀에 삭혀서 주셨다.

소의 젖꼭지를 닮은 고욤을 작은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으면, 사각사각 눈 내리는 소리와 함께 젖과 꿀이 흘러내리듯 살살 녹는 맛에 삼키기가 아까워 한참을 물고 있곤 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늦가을에 조물조물 만들어 빈 장독에 재어놓은 곶감을 긴긴 겨울밤에 하나씩 하나씩 빼어 주시기도 하고, 잣과 곶감을 동동 띄운 달콤하고 시원한, 물에 담근 과자 수정과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다.

얼음이 서걱서걱하고 알싸한 계피향에 으스스 진저리를 쳐가며 마시는 수정과는 겨울철 최고의 별미 간식이었다.

어머니의 장독대는 숨바꼭질이나 혼났을 때 나를 숨겨주는 고마운 곳이기도 했다.

닭들도 깨지 않은 이른 새벽,

어머니는 쪽진 머리에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 길어 올린 정화수를 장독대에 차려놓고 가족들의 평안을 두 손 모아 빈 다음 아침밥을 지으셨다.

애간장을 태우는 일이 생겨도 그러셨다.

엄마가 속이 많이 상하실 때면 장독대 뒤편에 가서 소리 없이 우셨다.

어린 막내아들이 옆에 가서 가만히 쪼그려 앉으면 그제 서야 소매깃으로 눈물을 훔치시고 두팔로 꼭 안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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