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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02.15 14:29:23
  • 최종수정2022.02.15 14:29:23

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설 연휴에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빌렸다가 참으로 속상한 일을 겪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자(亭子)를 소개하는 책에서, 아름다운 정자 사진 여러 장이 교묘하게 뜯겨 없어진 것이었다.

'찢는다'라는 화두가 유행이 된 시절이긴 하지만, 알 만한 사람까지 공공재인 도서관 책을 찢어가는 것을 접하니 '세상 왜 이러나!' 슬픈 생각이 들었다.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란 말이 있긴 해도, 가져간 것과 못 쓰게 훼손한 것은 엄연히 다른 법, 바르지 못한 사람을 보면 머리 가운데에 솟은 외뿔로 받아버린다는 해태를 도서관 앞에 풀어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속살이 찢긴 책을 어엿비 덮고 나니, 고대 유적지에서 나온 토르소(팔다리 없이 몸통만 있는 조각상)를 보는 듯 불에 탄 책들이 생각났다.

인류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는 분서(焚書) 사건으로는, 진나라 시황제 때의 분서갱유(BC213년), 마야 문명의 기록을 불태운 란다의 분서(1549년), 히틀러 때의 베를린 분서(1933년), 모택동 때 홍위병들에 의한 분서(1966년) 등이 있다.

"책을 불태우는 자는, 결국 인간도 불태우게 된다"는 독일 시인 하이네의 말에 대입을 하면, "찢기를 좋아하는 자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도 찢는다"가 된다.

찢기고 불태워진 책들만큼이나 안쓰러운 것이 있다. 요산유산(樂山遊山: 산을 즐기고 산에서 놀다)하다 보면 경치 좋은 곳에 있는 바위들은 하나같이 상처 투성이다.

지난해 다녀온 거창 수승대도 그랬다. 집채만한 거북 모양의 바위 사방팔방에 죄다 글씨를 새겨놨다. 옛날 은나라 때 거북이 껍데기에 불로 지진 갑골문을 보는듯하여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청산의 백석이 무슨 죄가 있다고 까닭 없이 얼굴에 글 새기는 벌을 주고 살을 째는 벌을 주는가?"

중국 문인 원굉도의 비난을 들을만도 하다.

조선 시대 두 사람이 있었다. 김홍연(金弘淵)은 후세에 자신을 알리기 위해 전국 곳곳 명승지 바위에 이름을 새기고 다녔다. 종당에는 아내도 없이 병을 얻고 불구가 되어 절집에서 기거하다 생을 마감한 그의 이름 세 자를 속리산과 화양동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조 때 기행문학자 지암 이동향은 속리산 문장대에 올라, 친구가 이름 새길 것을 청했으나 '이름 짓지 않는 이름'이야말로 참으로 큰 이름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찢은 자', '후벼판 자'에 이어 '빼앗은 자'도 있었다. '세한도'와 더불어 문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추사 김정희의 난(蘭) 그림 '불이선란도' 화면 왼쪽 아래에 화제를 보면,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不可有二 仙客老人'(처음에는 달준―먹을 갈아준―에게 주려고 그린 것이다. 다만 하나가 있을 뿐이지 둘도 있을 수 없다. 선객노인) '吳小山見而 豪奪可笑'(오소산ㅡ도장을 새겨준ㅡ이 그림을 보고 얼른 빼앗아 가려 하는 것을 보니 우습도다.) 추사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와 그림의 주인이 바뀌게 된 사연을 적어놨다.

여러 병들이야 고칠 수 있지만 탐욕과 속됨만은 예나 지금이나 고치기 어려운가 보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 나서 창밖을 보니 떡고물 같은 함박눈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입춘(立春)에 대설(大雪)이라니! 이야말로 입춘대길(立春大吉)이다. 비나 눈이 오는 밤에 글을 읽으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했으니, 커피와 함께 밤새 책을 봐야겠다.

성종의 고손자로 조선 중기 화가였던 허주 이징은 어린 시절 다락에 올라가 그림을 그리다 사흘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그를 찾은 후에 매를 때렸더니 흘러내리는 눈물로 새를 그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내일 날이 밝으면 깜짝, 신이 나 눈 위에서 뛰고 짖을 강아지와 까치들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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