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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북도 중앙도서관장

여행을 다니다 보면 소소한 인정과 친절에도 감동받고 뜻밖의 풍경에 감탄하기도 한다. 소싸움이 열리고 반시(盤柹)도 주렁주렁 열리는 경북 청도의 운문사도 그랬다.

입장료를 받는 아주머니의 정겨운 안내가 비구니 도량임을 생각케 한다. 들머리에서 절에 이르는 1.2㎞의 찻길 옆 오솔길은, 걷지 않고 차를 타고 지나면 알 수 없을 아름다운 '솔바람길'이다. 파르라니 깎은 여승(女僧)의 머리처럼 푸른빛이 도는 계곡물에는 만추(晩秋)의 붉은 단풍잎이 떠간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과 두 아름이 넘는 고목의 느티나무 길, 어우러진 잡목 숲과 붉은 소나무 길을 차례로 지나면 나타나는 나즈막한 돌담길을 천천히 돌아, 고향집 담장처럼 법당이 훤히 보이는 가슴 높이의 긴 담장길을 낙엽을 밟으며 자박자박 걸어 산사에 들어갔다.

파란 하늘엔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천년 고찰 마당에는 오백 년 된 처진 소나무가 앉은 듯 서 있다. 사방으로 10m씩 가지가 퍼진 위용이나 삼짇날 막걸리 12말을 받아먹는다는 위세는, 사천왕을 대신한 절 지킴이로 조금도 손색없어 보였다.

운문사는 꽃살문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15개 사찰 중 한 곳이다. 비로전 정면 어간의 5짝 꽃살문은 소목장 장인의 손길과 숨결이 그대로 살아있다. 사찰 꽃살문은 문이 닫힌 상태로 밖에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대개는 법당 문이 열리기 전 이른 아침에 찾아가지만, 그러하지 못하면 스님의 허락을 얻어 잠시 문을 닫아야 한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수미단(불단)의 조각도 꽃살문에 버금가 좋았지만, 서쪽 천장에 종을 매단 반야용선(般若龍船 : 피안의 극락정토에 갈 때 탄다는 배)에 걸린 밧줄을 잡고 매달려 있는 동자상(악착보살)과, 여의주를 문 용머리 조각상을 올려다보노라니, 성공이란 고해에 빠져 천방지축 헤매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선조들의 잠언(箴言)이 떠올라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품계란 밟아 올라가서 1품에 이르더라도 아침에 거둬 가 버리면 저녁에는 평민이 되고, 재물이란 늘려 모아서 만금에 이르더라도 저녁에 잃어버리면 다음날 아침에는 가난뱅이가 되는 법이다."(혜환 이용휴)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청장관 이덕무)

비구니의 타종 모습과 찬불가 소리에 메말랐던 가슴이 울컥했다. 눈길도 한 번 안주고 극락교를 건너 수행처로 향하는 여승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호거산에서 흘러내리는 차고 맑은 개울물에 마음을 씻고 속세를 떠나듯 인심 좋은 절집을 나섰다.

운문사에 가면 다섯 가지 좋은 게 있다. 예쁘고 긴 돌담길과 기와담장길 걷기,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한 9점의 보물과 한 그루의 천연기념물 감상하기, 호거산 위에서 뒹구는 뭉게구름 바라보기, 대웅보전 뒤뜰에 잘 가꿔진 정원 산책하기, 다정하고 친절한 스님들과 대화하기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언제고 '운문사 새벽예불'에 가고 싶다.

절 아래 여관을 잡고 3시에 일어나 솔바람 숲길을 걸어 절에 들어가 도량석 독송을 시작으로 종송(鐘頌), 범종, 법고, 운판, 목어 소리를 듣고, 100여 명 비구니 스님들의 장엄한 예불 합창과 가슴을 두드리는 목탁소리를 들으며 무릎 꿇고 조용히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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