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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멋모르고 빌려 온 『상촌집』은 읽을 엄두도 못 내고 여기저기 뒤적이기만 했다. 모든 도서관이 대체휴일로 문을 닫아 책을 빌릴 수도 없었다. '쉬려던 참에 넘어진다'고, 철부지 아이의 핑곗거리처럼 도서관 휴관을 탓잡아 하루쯤 게으름을 피워보리라 마음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체한 듯 답답하고 어지러움이 머리까지 올라오더니,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해서는 기어코 몸도 스멀거리고 두통까지 합세했다. 이리저리 궁리를 해도 짐작가는 원인도 없고 전에 없이 처음 겪는 일이라 답답했는데, 일찍 잠자리에 들어 곰곰이 생각하니 '부독증(不讀症)'이 아닌가 싶었다. 입안에 가시가 돋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는 수 없이 『상촌집』을 다시 펼치고 오언고시 중에서 눈에 띄는 <樹·吟(수충음)>을 더듬더듬 읽었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장가 상촌 신흠이, 나무를 갉아먹는 송충이(松蟲이)가 마치 군자를 핍박하는 소인배와 같다고 노래한 시인데,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하늘은 왜 이런 놈 만들어 내 잔인하게 남을 해치게 했나. 옛날 태평한 시절에는 만물이 좋은 때를 만났건만 어찌해 지금은 운수 어그러져 옳은 이 핍박받고 악한 놈 득세하나…. 저런 인간들 나무 벌레와 뭐가 다른가. 공연히 마음이 슬퍼지네."

중종 11년(1516년)에도 송충이를 예로 든 충언(忠言)이 있었다.

"근래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없고, 놀고 먹는 사람만 있는 형편입니다. 옛 역사를 상고하건대 사람이 공 없이 먹기만 하면 송충이가 발생해서 소나무의 잎을 먹는다 했습니다. 서울 주변의 산을 보건대 소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송충이가 잎을 거의 먹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의 대재(大災)이옵니다."

소나무의 잎을 갉아먹어 나무를 죽이는 해충이 '송충이(松蟲이)'이고, 밥만 먹고 일 없이 지내는 사람이 '식충이(食蟲이)'라면, 순박한 백성을 속이고 군림하는 못된 위정자들은 '정충이(政蟲이)'가 맞을 것이다. 정충이들은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들의 정권 유지만을 위해 포퓰리즘, 언론통제, 하향평준화, 역사왜곡 등의 우민화 정책(愚民化 政策)을 펼친다.

이러한 우민화 정책을 꼬집은 재미있는 소설이 예브게니 자먀틴의 『우리들』, 올리버 헉스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등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우리들』의 모든 국민은 도로에 설치된 '가두녹음막'에 의해 하루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문명인들에게 일종의 마약인 '소마'가 주어지고, 『1984』에서는 '빅브라더'가 정보를 독점하여 사회를 통제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오웰의 또 다른 작품 『동물농장 』은 돼지를 통해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정체를 파헤친 정치 소설인데, 그가 있었다면 『신동물농장』을 썼을 것이다.

<모처의 동물농장에서 최고회의가 열렸다. 나폴레옹(돼지)이 설계하고 복서(말)가 지은 아파트형 축사(畜舍)가 무너졌는데 과연 누구의 잘못이며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를 판정하기 위해서였다. 나폴레옹은 대강만을 설계하여 도장을 찍었다 하고, "내가 일하겠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며 시공을 자청했던 복서는 설계도에 따라 지었다고 주장했다. 회의장에는 '녹음막'인 투명 스크린이 설치 됐고, 의장 '빅브라더'를 포함한 14마리의 짐승들에겐 최상의 '소마'가 제공되었다. 빅브라더는 음울한 목소리로 결정문을 읽었다. "본 건은 사상 초유의 일이므로, 별도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충분한 기간 조사하고 검토한 후에 판결하기로 한다." >

마음을 달래려 아산 봉곡사로 향했다. 소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어 오르니, 초가을 단풍을 닮은 황색의 절집 고양이가 입구까지 나와 손님맞이를 하곤 앞장서서 느릿느릿 대웅전으로 이끈다.

'지금 내 옆에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스님의 기왓장 글귀에 미소 지으며, 인근에 있는 현충사를 찾아 님의 영전에 향을 피우고 충무문을 나서니 옆에 하얀 비(碑)가 서 있다. 충무공의 부하들이 장군을 그리며 세웠다는 눈물의 비석 '타루비(墮淚碑)'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깊은 시름의 비(憂心碑)를 가슴에다 세우고 천상병의 시 「국화꽃」을 읊조린다.

'오늘만의 밤은 없었어도/달은 떴고/별은 반짝였다./괴로움만의 날은 없어도/해는 다시 떠오르고/아침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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