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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북도 중앙도서관장

경계(境界)는 긴장과 흥분이다. 두 계절의 경계에 선 날씨며 나무며 새며 모두가 미묘한 아름다움을 준다. 문밖은 온통 빛나는 가을 정원이다. 어정칠월에 동동팔월이라더니 어느새 막새바람이 불고 햇살도 부드러운 황금빛을 띠기 시작했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 추위라도 조금만 견디면 봄 햇볕이 녹여주듯이, 그 덥던 여름 더위도 조금 참으니 가을 바람이 씻어준다. 이제 창문도 닫아야 한다.

청명한 가을 아침에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산소를 뿜어내며 변해가는 나뭇잎을 보는 것, 새들이 찾아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 떠들며 학교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파트를 둘러싸고 우거진 나무들은 공기를 맑게 해주고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집에서 보이는 수형(樹兄)들만 해도 매화나무, 벚나무, 목련, 산수유나무, 생강나무, 산딸나무, 조팝나무, 화살나무, 회양목, 주목, 상수리나무, 측백나무, 스트로브잣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배롱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대왕참나무, 메타세콰이어, 감나무, 대추나무, 자작나무 등 20종이 넘는다. 길가 촘촘한 영산홍 덤불은 따가운 햇빛과 차가운 비를 피하는 고양이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그 뒤로 빽빽이 서있는 측백나무들은 참새들에게 잠자리를 내어준다.

솔새, 참새, 직박구리, 방울새, 까치, 멧비둘기 등이 요즘 찾아오는 친구들이다. 참새보다 작고 느티나무 잎새보다도 작은, 100원짜리 동전 두 개 무게의 솔새들이 창밖 가지에 올망졸망 앉아 '리, 리, 리, 리' 네 마디씩 끊어가며 조잘댄다.

"새잎 넣어 만든 느티떡 먹고 싶다!"

'삐요, 삐이요, 삐, 삐'

아침 까치만큼이나 시끄러운 직박구리는 대왕참나무를 좋아한다. 화가 나거나 힘을 쓸 때, 조폭의 깍두기 머리 같이 머리깃을 바짝 세운다 하여 얻은 별명이 '조폭'이다. 얼마 안 있으면 황홀하게 변신할 대왕참나무 가지에 가만히 앉아 깃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예뻐 한참을 올려다보았더니 무언가를 찔끔 떨어뜨리고 날아간다.

조(鳥) 녀석들도 스님들처럼 높은 곳에서 용변을 본다. 까치들은 스트로브잣나무를 즐겨 찾는다.스트로브잣나무에는 잣송이를 닮은 커다란 솔방울이 달릴 뿐 잣이 안 열린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청설모도 가끔 올라갔다가 허탕치고 내려와 웃음 짓게 한다.

'꽈악ㅡ, 꽈악ㅡ, 꽈악 ㅡ'거리는 까마귀와는 다르게, '깍, 깍, 깍'이나 '카치, 카치, 카작, 카작'하고 소리를 내는 까치는 나무 꼭대기에 앉아 살랑이며 짖는 것을 좋아하여, 높이 올라갈수록 엉덩이만 보일뿐인 원숭이를 생각게 한다.

시도 때도 없이 '국국, 꾹꾹, 꾸ㅡ, 꾸루ㅡ, 꾸꾸'하는 멧비둘기의 소리도 이제 더 이상 거슬리지가 않는다. 젖을 게워 내어 새끼에게 먹인다니 말이다.

'또르르르륵, 또륵, 또륵' 영롱한 방울새 소리는, 속세에 숨어서 세상을 피하는 시중처사(市中處士)의 마음처럼 청아하기만 하다.

이제는 거의 추억이 되다시피 한 그리운 소리도 있다. '삐찌, 삐찌, 삐찌, 쫏, 쫏, 쪽, 쮸르르'

처마도 전깃줄도 없는 아파트촌에서 제비를 만나기란 힘든 일이 되었다.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처럼, 고향집 빨랫줄에 쪼르르 앉아 지지배배 노래하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아이는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멀찌감치에 서서, 멋진 턱시도의 중창단을 폼 나게 지휘했었다. 우편함의 제비가 반가운 이의 손 편지를 물고 오기를 기다려 본다.

높은 나무 밑을 지나다보면 어른 공경을 알게 될 것이고, 주머니에 넣고 싶도록 작고 예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친절과 사랑이 생각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서재와 정원을 가지고 있다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키케로)

책이 있는 방에서 새소리와 함께 글을 읽고, 창밖으로 눈을 돌려 가을 정원을 산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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