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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북도 중앙도서관장

"2천 원만 주세요."

"천 시인이라도 돼요? 2천 원만 달라게."

"그새 이발비가 10%나 올랐더라구요. 현금이 2만 원밖에 없어서 2천 원 외상 졌어요. 다음번에 함께 달라고 하던데 추석 전에는 갚아야지요."

애들처럼 순박했던 <귀천>의 천상병 시인이 그랬었다.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천상병의 <막걸리> 중에서

시인은 소풍 같은 나날에 막걸리를 사 먹기 위해 임의로운 사람들에게 손을 벌렸다.

"1천 원만!", "500원만!"

결혼 한 사람에게는 1천 원, 안 한 사람에게는 500원이었다.

외상값, 천상병, 막걸리가 머릿속 서랍에서 1960년대 추억을 끄집어냈다.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면 아버지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읍내 가겟방과 대폿집에 밀린 외상값을 갖다 드리라며 돈과 명세를 쌈지에 넣어 주시면, 소장수들의 전대처럼 허리춤에 차고는 보디가드인 '도끄'(dog)와 함께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대폿집 외상은 장날에 드신 막걸리 값이었고, 가겟방 외상은 술만 드시면 아이들에게 나눠주셨던 사탕 값이었다.

아저씨가 주신 사탕을 까먹으며 집에 가다가, 참새 방앗간처럼 들리던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봄이면 할미꽃이 예쁘게 피는 증조할머니 산소에 앉아 주변에 사람이 없나 쓱 둘러보고는, 아주머니가 누런 양은 주전자에 가득 담아 주신 막걸리를 한 모금 두 모금 홀짝홀짝 마셨다. 옆에 앉아 빤히 쳐다보던 도끄의 눈이 똥그래지더니 이내 촉촉해졌다.

"치사하게 혼자만 먹어?"

손을 오므려 조금 따라주었더니 게 눈 감추듯 핥아먹는다.

"옜다! 나도 세 모금 마셨으니 너도 삼세번이다."

넓었던 신작로가 실골목처럼 좁아 보였다. 반이나 남았을까 한 주전자 손잡이를 움켜잡고 갈지자로 걷다 보니 도끄도 몇 발작 못 가서 픽 쓰러지곤 하였다. 외상 술값 갚았다고 물을 하나도 안 탄 막걸리를 주신 것이다.

동네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 가까스로 도착해서, 작대기로 땅에 줄을 죽 긋고는 두 팔을 벌려 중심을 잡고 걷는 연습을 했다. 친구들과 비석치기를 하면 1등을 자주 먹어 내심 자신이 있는 곳이었다. 손바닥으로 양볼을 여러 번 두드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사립문을 들어서면, 도끄는 어느새 헛간으로 내빼어 꼬리까지 숨기었고, 주전자를 받아든 엄마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타서 다시 한 되를 만드셨다.

추억의 연속 상영 끝에 어젯밤에는 고향의 꿈도 꾸었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자유로운 꿈이었는데도, 그 내용이 너무도 생생하여 꿈속의 대화까지도 구슬을 꿰듯 빠짐없이 적을 수 있는 정도였다. 읍내에 하나뿐인 중국집에서 자장면도 시켜 먹고, 화단을 손질하던 우체국장으로부터 흰 다알리아 한 송이도 건네받았다.

"이 놈의 꽃말이 '친절에 감사합니다'라네요."

등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9월의 햇살을 만끽하며 메뚜기 뛰노는 논두렁을 지나, 도토리나무 사이로 완만하게 구부러진 오솔길도 걸었다.

푸른 하늘 속에서 물장구치는 가을의 구름을 올려다보니 양나라 도홍경의 이야기도 재현됐다.

양무제가 도홍경에게 물었다.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

"산중에 무엇이 있냐고요? 고개 위에 흰구름 많지요. 단지 혼자만 즐길 수 있고 임금님께 가져다 줄 순 없지요."

친절한 인사 한 마디로 단골이 된 노상의 요구르트 아줌마가 계신다. 어제는 못 샀으니 오늘은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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