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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북도 중앙도서관장

"우리 집 능소화가 예쁘게 피었습니다.6월 10일 저녁 7시까지 막걸리 1 되씩 들고 부지서신당(不知鼠腎堂)으로 오시지요. 정○○ 배상"

퇴직하신 선배님의 엽서를 받고, 퇴근 후 가덕막걸리 두 통을 들고 부지서신당을 찾았다. 지참물은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선배님의 방책이다. 현직에 계실 때 '부지서신(不知鼠腎: 쥐 뿔도 모르다/아무것도 알지 못하다)' 이라며 스스로를 낮추시더니 사랑방도 '부지서신당'이라 하셨다.

오래전에, 캐내어야 했던 능소화 두 그루를 선배님댁 자작나무 곁에다 심어드렸다.

"자, 자. 저고리 벗고 넥타이 풀고 와이셔츠도 벗고 이백이처럼 합시다."

"부채질하기도 나른하여 / 푸른 숲 속에서 웃통 벗고 / 두건도 벗어 바위에 걸쳐두니 / 드러난 이마를 솔바람이 씻어낸다"

이백의 시 <하일산중夏日山中>이다.

"여름 동안 피고 지고 피고 지며 초가을까지는 가겠지요. 동백꽃처럼 툭 떨어지는 능소화가 보고 싶어 주변에는 수국을 안 심었어요."

그러고 보니 화단 가득히 달덩이 같은 수국들이 수북수북 피었다. 사모님의 감자·녹두빈대떡은 술안주로 그만이다.

"아기 천사, 트럼펫 부느라 볼이 발그레졌네."

흥에 겨운 한마디에 한 대접의 장원주가 내려졌다. 전봇대만 한 고사목을 잘도 타고 오른 능소화 사이로 하얗고 매끄러운 자작나무 속살이 얼핏얼핏 엿보인다.

"기름기가 많아 오랫동안 썩지도 않는 자작나무 껍질 같이 나이가 들어도 철들지 못하고 미끄덩거리는 늙은이를, 능소화처럼 감싸 안아주는 집사람이 늘 고맙지요."

"늘 온화하신데 화 푸는 비법 좀 알려주시지요."

"화가 나면 '내가 또 미쳤구나'하고 생각해요."

"능소화를 닮은 연인한테서 소식이 감감한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 '다른 애인이 생겼나보다' 생각하세요."

선배님의 촌철살인에 우리는 버릇도 없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안락선생 소옹이 "좋은 술은 취하도록 마시지 말고, 좋은 꽃은 반쯤 피었을 때 살며시 보라" 하였거늘, 달이 중천에서 내려다보고 소쩍새가 울고서야 꽃놀이는 끝이 났다.

선배님이 계셨던 자리에 올라가고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수소문하여 경기도의 한 요양원을 찾았으나 먼 곳으로 출타 중이셔서 과일과 명함만을 맡기고 돌아왔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반가운 문자를 받았다.

"강사삽니다" 휴대폰 문자판의 앞자리만으로 '감사합니다'를 치신 것이리라. 자식들은 다 미국으로 건너가고, 철석같던 사모님도 돌아가시고 홀로 계시더니 눈도 기억도 많이 어두워지셨나 보다.

당신의 책상에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를 조그맣게 써놓고 내내 실천하셨던 분이다.

그리움에 물든 주황색 능소화는 여성과 명예를 상징하고, 수국의 꽃말은 진심이다. 6월에, 선배님과 사모님을 생각하며 다녀올 곳이 있다. 깎아지른 암벽을 타고 오른 마이산 탑사의 능소화와, 거제 바닷가의 수국을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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