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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부안 내소사 일주문 바로 앞에는 700년도 더 된 느티나무가 절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능가산내소사' 현판의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발목부터 잡는 매표소에다 망령된 생각을 내려놓고 부처님께로 걸어갑니다. 피안교까지 600m 좌우에 전나무들이 도열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듯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습니다. 오대산 월정사·광릉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과 함께 한국의 3대 전나무 숲 중 한 곳입니다. 가지에서 흰 액체가 나온다고 하여 '젓나무'로 불리기도 했던 전나무가 사찰 주변에 많은 것은, 절을 보수하거나 고쳐 지을 때 사용할 목적으로 심은 것이라 합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산속 길처럼 울창한 데 비해,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로마의 도로처럼 시원합니다. 원근법으로 그린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합니다.

피안교를 건너 천왕문까지(150m)는 지나온 전나무들 보다 더 굵은 단풍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자연석을 초석으로 쓰고 거기에 맞게 그랭이질하여 높낮이가 모두 다른 기둥의 봉래루 밑을 지나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잔뜩 굽힌 사미승을 연상케하는 잘 생긴 소나무가 대웅전으로 안내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명품으로 일컬어지는 내소사 대웅보전의 정면 3칸 8짝 꽃살문 전체가 한꺼번에 나오도록 찍으려면, 가운데 큰 문인 어간문을 열어놓기 전에 일찍 가야합니다. 아름다운 내소사 꽃살문은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白骨)처럼 보이지만, 수백 년 세월 속에 단청은 다 지워지고 나뭇결무늬만 남아있다는 것이 사찰측의 설명이고, 유홍준 교수는 오색단청이 아니라 나뭇빛깔과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지(素地)단청이라는 입장입니다. 당시 꽃살문을 제작한 소목장(小木匠)이나 단청과 불화를 관장했던 화승(畵僧)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보니, 천천히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석가모니와 마하가섭처럼 이심전심하는 수밖에요. 400년 풍상 속에 더욱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진 연꽃과 국화와 모란 등의 나무꽃들이, 고풍스런 격조와 함께 그렇게 친근하고 편할 수가 없습니다.

대웅전 안에 들어가 닫힌 문을 바라보면, 꽃무늬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마름모꼴 문살 그림자만 비치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꽃살문은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고유의 뛰어난 문화유산입니다. 특별히 고맙고 기억에 남는 것은, 관조 스님이 생전에 사찰 14 곳의 꽃살문을 사진에 담은 '사찰 꽃살문'과, 영주 성혈사 나한전과 논산 쌍계사 대웅전의 꽃살문입니다. 1633년 중건 시 쇠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만 깎아 끼워 맞춘 대웅보전에는 미완의 전설도 전해집니다. 목수가 3년 동안 깎은 수많은 목침 중 하나를 사미승이 슬며시 감추자 그것을 빼놓고 법당을 지었다는데, 지금도 우측 천장에 목침 하나가 들어갈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불상 뒤쪽 벽에는 국내에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보는 이를 따라 움직이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얘기도 전합니다. 대웅전 서쪽 처마에는 특이하게 여의주가 아닌 목탁을 입에 문 용이 있습니다. '이곳에 오면 새롭게 태어난다'는 절이름(來蘇) 때문인지 왠지 새로워진 기분이 듭니다.

내소사에서 승용차로 20여 분 거리에 개암사가 있습니다. 감교리 개암동 입구 큰길에서 시작되는 아름드리 벚나무 숲길은, 사진발 좋은 개암저수지를 돌아 절 입구까지 빽빽이 3㎞나 이어져, 봄에는 벚꽃이 하늘을 가리고 여름에는 초록의 터널이 햇빛을 막아줍니다.

벚나무 숲이 끝나는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 300m에는 내소사 전나무들보다 더 큰 전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사천왕문 양 옆에는 짙푸른 녹차밭이 가지런합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 오르면 무한강산(無限江山)의 장쾌한 풍광이 끝도 없이 펼져지듯이, 개암사 대웅전 앞에 서면 탁 트인 전망에 산정무한(山情無限)이 느껴집니다.

주차료도 입장료도 안 받는 인심 좋은 절집에서 지나치기 아까운 곳이 있습니다. 전나무 숲과 차밭이 내려다 보이는 보제루에 오르면 14칸 커다란 창문으로 저마다의 풍광이 들어옵니다. 산새소리 들으며 14장 풍경 사진 찍기도 좋고, 대웅전 뒤 익선관 모양의 울금바위 위에서 노니는 구름 바라보기도 좋고, 전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녹차밭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도 참 좋습니다.

내소사와 개암사 부근에는 천연기념물도 많습니다. 호랑가시나무 군락, 후박나무 군락, 꽝꽝나무 군락, 미선나무 자생지 등. 그중에서도 내소사에서 남서쪽으로 12㎞쯤 떨어진 도청리 해안 도로가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군락지는 세계적으로 귀중한 식물자원입니다. 호랑이가 등이 가려울 때 육각의 잎에 돋아난 가시에 등을 비벼 긁는다 하여 '호랑이 등긁개'로도 불리는 이 나무는 요즘에 크리스마스 트리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보일러는 커녕 효자손도 하나 없이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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