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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

시사평론가·전 언론인

손흥민 선수(토트넘)가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2021/2022 시즌 23골을 성공시키며 득점왕에 올라 대한민국과 전세계 축구팬들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유럽 5대 리그(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최초의 득점왕이라는 영예에 더해 내용면에서도 공동 득점왕인 무함마드 살라흐(리버플)는 페널티킥으로 5골을 넣은데 비해 손흥민 선수는 23골 모두 필드골이어서 득점왕의 순도가 다른 차원이다.

손흥민 선수가 기적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고, 앞으로도 한참 동안 신이 나게 할뿐더러 일본과 중국 등 인접 국가 축구 팬들의 부러움까지 사게 된 것은 즐거운 덤이다.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 선수는 SNS를 통해 "한국의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6만 명의 관중 속에서 유독 태극기와 한국 분들의 얼굴은 참 잘 보인다. 매번 마음이 가득 찬 기분과 함께 큰 힘이 생기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밝혔다. 국내 축구팬들에 대한 멋진 화답이다. 평소 축구 실력은 물론 인성 좋기로 소문난 손흥민 선수가 이룬 쾌거로 "손흥민 덕에 살 맛 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요즘이다.

유럽에서 지도를 놓고 볼 때 지구 동방의 맨 끝, 극동(極東) 지역의 작은 나라, 그것도 분단된 코리아의 축구 선수 손흥민이 16세에 독일의 유소년 팀에 처음 입단했을 때 그가 장차 유럽 최고의 리그인 EPL에서 득점왕 왕좌에 오르리라고 상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그러나 손흥민 선수는 해 내고 말았다. 손흥민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며 성장했고, 유럽에 진출해서도 인종차별 등을 극복하며 엄청난 노력으로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왔다. 한국의 평범한 소년이 세계적 영웅이 되기까지 소설 같은 장엄한 서사를 몸으로 써 온 손흥민 선수라는 걸 우리가 알기에 내 일처럼 좋아하고 이 기쁨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바라는 것이리라.

우리의 서른 살 청년 손흥민 선수가 전 세계인을 놀라 게 만드는 걸 보며 다른 많은 젊은 세대들도 위안과 용기를 얻게 되기 바라는 마음이다. 심화하는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되면서 결과적으로 불공정한 경쟁에 내 몰리는 절대 다수의 젊은이들이 손흥민 선수의 성장 드라마를 통해 꿈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드라마를 채워 넣는 계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비단 스포츠 분야만이 아니라 자신을 던져 삶의 가치를 충족시키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분야는 많고도 많다. 손흥민 효과는 두고두고 막강한 순기능을 발휘할 게 틀림없다.

내가 유일하게 빼먹지 않고 챙겨보려 노력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모 방송의 여자 축구 프로그램이다. 출연진은 엘리트 선수급 여자들이 아니고 아마추어 가운데 생활체육 동호인 수준에도 못 미치는 생초보들이 대부분이다. 지금껏 연예인 김태희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프로그램의 축구 선수로 등장하는 연예인과 모델, 방송인 등이 거의 다 모르는 얼굴들이다. 그런데도 꼭 시청하려 애쓰는 건 기본이고 선수들과 동화되어 박수에다 외마디 비명에다 할 건 다한다. 골을 넣자마자 동료들과 국가대표 출신 감독이 한데 엉켜 세상 다 얻은 듯 환호하는 장면이나, 경기에서 패한 뒤 서로 토닥이면서도 서럽게 폭풍오열 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울컥해지도록 감성을 자극한다.

축구에 문외한이었던 여자들이 적극적인 훈련으로 조금씩 향상되는 기량과 팀워크를 선보이며 몸 사리지 않고 진정성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과정은 말 그대로 감동을 내포한 성장 드라마다. 성장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을 이뤘느냐에 온전히 있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이뤘느냐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실패와 고통의 축적을 들여다보게 되어 예능과 다큐를 동시 감상하는 느낌이다.

손흥민 선수가 쓴 성장 드라마가 개인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과 전세계 축구팬들의 찬사를 받는 것 역시 축구 선진국이라 할 수 없는 나라의 선수가, 축구의 본향 영국 리그에서, 철저한 자기관리와 피눈물 어린 훈련으로, 인종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고, '이타적 월드클래스'로 헌신하며, 내로라하는 서구권 선수들을 제치고, 아시아계 최초로 득점왕에 오른, 각본이 있을 수 없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불멸의 기록을 소유한 손흥민 보유국이 됐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제2, 제3, 제n의 손흥민이 나오도록 젊은이들에게 무수한 기회의 창을 열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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