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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얼마 전 아이가 학교에서 스티로폼과 클레이를 이용해 눈사람을 만들어 왔다. 장갑을 낀 눈사람의 손에는 무언가 들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핫팩이라고 적힌 글씨가 보였다. 이번 겨울의 지속적인 한파로 인해 등교할 때 장갑을 끼도록 하고 핫팩을 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인상적이었는지 자신의 모습을 눈사람에 투영하고 있었다. 아이는 만들어 온 눈사람을 장식장 위에 올려두고 날마다 보면서 흐뭇해했다. 열심히 만든 만큼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문득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초라하고 슬픈 삶을 살았던 자신의 모습과 내면의 진솔한 감정을 가감 없이 그린 화가이다. 본인의 모습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은 매우 용감한 일이라 생각된다. 간단한 증명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좋지 않은 피부나 모난 부분들을 보정을 통해 실물보다 아름답고 우월한 모습으로 수정한다. 이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단점을 드러내기 어려우며, 실제보다 좋은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흐는 작품활동을 시작한 27세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10여 년간 36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의 자화상은 고통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다. 신인상주의 기법에 영감을 받았던 고흐는 점묘법을 활용하여 초기 자화상에서 붓 터치가 점처럼 나타나고 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고흐 작품 특유의 기법인 길고 구불거리는 선으로 점차 변모하게 되었다. 화가로서 고흐는 작품이 판매되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신적 문제로 인해 삶이 평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작품활동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혼신을 바친 진정성 있는 삶이었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마감한 짧았던 삶 가운데 고흐는 틈틈이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자 했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 소장 '귀가 잘린 자화상'(1889년 1월)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작품이다. 무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모자를 쓴 채 귀를 붕대를 감고 있는 고흐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동료 화가인 폴 고갱과 격렬한 다툼 직후 정신질환으로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귀를 잘랐고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그려진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기괴하고 무서운 한편 고통이 심했을 텐데 그 모습을 담담하게 자화상으로 남겼다는 사실에 안타깝고 뭉클하기도 하다. 그 행동에 후회와 마음의 짐을 놓아버린 듯한 그의 표정에서 자신에게 유독 거친 현실의 회환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의 배경에는 일본풍의 판화인 우키요에가 걸려있다.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들과 후지산이 표현된 것이 인상적이다. 우키요에는 일본 에도시대 양식의 목판화로 후기 인상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고흐 역시 자포니즘 양식을 좋아했고 작품에 영감을 받았다. 반대쪽은 이젤과 캔버스가 그려진 것으로 말미암아 귀를 다친 절망적인 사건 이후에도 희망과 열정을 놓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작품에서 붕대를 감은 쪽은 오른쪽으로 보이지만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왼쪽이 절단된 귀 쪽이다. 이후의 자화상은 오른쪽 얼굴을 표현했다.

1889년 8월과 9월에 마지막 자화상을 그렸고, 두 작품 모두 푸른 배경에 파란 옷을 입은 고흐는 불안정하고 수척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내면을 받아들이고 배경을 절제한 작품이다. 피부마저 창백한 푸른빛이 감돈다. 이 시기에 고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인생은 냉담했지만, 작품에 진정성 있는 표현은 보는 이에게 공감과 감정적 위안을 준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작품이 주는 순수하고 진심 어린 아름다움은 변치 않으며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다. 어두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 최선을 다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고찰했던 고흐는 그림 속의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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