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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지난 여름, 허리를 다치고 통증으로 인해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다. 일상생활을 해야하니 통증을 감내하며 억지로 걸어 다녔다. 어린 자녀를 학교 및 학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아파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걷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일찍 나서므로 속도는 상관이 없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일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이었다. 허리를 다치기 전에는 횡단보도의 신호가 짧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허리를 다친 이후 걷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다 건너기 전에 빨간불로 바뀌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팡이를 짚고 다녔기에 허리가 아픈 것을 이해해주는 운전자도 있었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이유를 모르는 이들이 더 많으므로 빨리 건너지 않으면 답답해하며 클락션을 울렸다. 아마도 나를 눈치 없이 느리게 걷는 사람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가까운 지인이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면 어떨지 제안을 했다. 지팡이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다는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어 다른 이유로 배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조언이었다.

양심상 그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 허리가 아프고 느리게 걸어 다녀서 오해받는 상황을 몸소 겪어 보니 운전자의 생각이 이해됐다. 나 역시 운전을 하면 천천히 걸어 다니는 이들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딘가 불편한 곳이 있기에 느리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수업 전에 독서를 한다. 집에서 책을 한두 권씩 가져와 책을 읽는 유익한 시간을 가진다. 매일 한 권씩 책을 가지고 가던 아이는 어느날 두 권의 책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나는 한 권이라도 시간 내에 제대로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권만 가져가도록 지도했다. 다음 날에도 두 권을 가져가겠다고 하기에 왜 두 권을 꼭 가져가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이유는 짝이 바뀌었는데 같은 책만 가져오는 친구라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과 책을 바꾸어 읽었는데 자신이 가져간 책도 다 읽게 되어 그 친구에게 새로운 책을 읽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두 권을 가져가고자 한 것이었다.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독서'라는 유의미한 시간에 같은 책을 읽으며 지겨워했을 친구를 위한 배려심 깊은 행동이었다. 처음부터 이유를 물어봤더라면 책을 두 권씩 챙겨주었을 거라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았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여름 허리를 다치며 불편함을 느꼈다. 느린 걸음으로 다녔지만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보이지 않는 불편함이 누구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병원에 다니며 같은 처지의 아픈 사람들을 자주 접하며 다양한 이유에서 다칠 수 있으며 건강하던 이들도 찰나의 사고로 불편한 신세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더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이에게 한 권의 책이라도 제대로 읽기를 바라는 마음은 물론 부모로서 올바른 마음이다. 그러나 두 권의 책을 가져가는 이유를 미리 물어봤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안함이 남는다. 아이의 행동과 판단 역시 그에 따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스스로 하는 생각이 옳을 때도 있지만 모든 상황에서 내가 인지하지 못한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 깊은 과정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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