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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지난 금요일 새벽 늦은 시간까지 글을 쓰는 작업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예상했던 대로 피곤했으나 꾸역꾸역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나를 위해 점심시간 남편이 오리 백숙을 예약해 먹으러 갔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점심 역시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간의 피로가 누적되어 입맛이 없어진 까닭이었다. 그러나 애써 예약한 남편의 정성을 생각해 최대한 맛있게 먹었다.

입맛이 없을 때는 먹지 않는 것도 방법인데 억지로 먹은 것이 화근인지 속이 좋지 않았다. 인근의 공원을 산책하며 컨디션을 회복해 보려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시원한 커피숍에서 음료수를 마시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과일 에이드를 마셨지만,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때 집에 돌아가 쉬었어야 했다. 그러나 늘 주말마다 그랬듯, 장을 보고 저녁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차를 타고 집이 아닌 마트로 향했다. 승차하는 순간 멀미가 왔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마트를 갔다. 장을 보며 가격 비교를 하고 카트에 물건을 담는데 급기야 구토가 났다. 꿀꺽 삼키고 끝까지 장을 봤다.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눈을 감고 쉬었다. 그러나 쉬는 것도 잠시, 엄마이자 아내라는 책임감으로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기르는 열대어의 20ℓ 어항의 물을 갈았다. 일을 끝내는 순간 긴장감이 풀려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고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은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움직일 수가 없어서 저녁 식사도 거르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일요일이라 병원을 갈 수 없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 가까운 마트에 갔다. 소화 음료를 한 상자 구입했다. 그것을 마시고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쉬면서도 책임감에 앞서 가족의 밥은 어떻게 챙겨줄 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속이 낫고 나서야 비로소 올바른 상황판단을 할 수 있었다. 아픈 와중에 해야 할 일은 마무리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책임감으로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았다. 휴식이 우선시 되어야 할 상황에서 가족들의 식사 걱정과 어항의 환수 등으로 건강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사실 가족들의 식사는 내가 아플 동안 배달음식을 먹거나 식당에서 해결해도 되고 물을 하루 이틀 늦게 갈아준다고 해서 열대어가 갑자기 죽지는 않는다. 우직하고 강한 책임감으로 늘 스스로가 희생되는 느낌이 들어 너무 슬프다. 8, 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당시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에 책임감의 중요성을 강하게 교육받고 자랐다.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는 과도한 책임감을 조금 내려놓고자 한다.

책임감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자신의 건강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책임감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래전 공부를 하며 중등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 이틀 짧은 일거리였지만 최선을 다해 수업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힘든 학교생활을 책임감으로 억지로 하던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수업시간에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고 엎드려만 있는 학생이었다. 당일 내로 과제를 마무리해서 제출하도록 안내를 했더니 예민하게 받아들여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이후 점심시간에 미술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그 학생이 찾아와 자신의 속내를 말했다. 친구의 오해로 학교생활이 엉망이 되어버렸고 자신은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했다. 그나마 내가 하루만 수업하고 다시 일면식이 없는 관계여서 어렵게나마 말을 꺼낸 학생이었다. 당시의 교육적 분위기에 미래를 생각하며 잘 극복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세월이 흐르며 생각도 변했다. 다시금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그 학생에게 과도한 책임감으로 스스로 괴로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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