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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얼마 전 개인전을 했다. 나무와 잎을 주제로 한 인간사를 표현한 작품이 주를 이룬 전시였다. 수필과 평론을 쓰다 보니 다양한 인간사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편이다. 천태만상의 인간사를 겪어보니 수없이 뻗은 나뭇가지나 잎맥과 비슷해 무수한 가지를 통해 주제를 명확히 드러나게끔 잎이 없는 나무를 그렸고 별도의 작품으로 잎을 그려 나뭇가지처럼 수없이 뻗은 잎맥을 표현하기도 했다. 전시회를 통해 인간사를 관객들과 고찰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계기를 가졌다.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해석 역시 다양했다. 어두운 바탕에 흰색으로 표현한 나무를 보고 우울하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우아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밑둥이 튼실한 나무 작품을 보니 아버지가 생각난다는 관람객도 있었다. 전시장을 찾은 여러 사람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관람객이 있다. 혼자 머쓱하게 전시실에 들어선 관람객에게 나는 인사를 하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참을 서서 구경하며 전시장을 떠나지 않았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작품이 와닿는지 여쭈니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살아온 시간 중 아픈 시절을 보냈던 과거가 생각 나서라고 했다. 가부장적이며 엄한 아버지 아래 성장한 까닭에 지금도 좀처럼 마음의 상처가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어린 시절 빵이 먹고 싶어 사 왔는데 아버지가 돈을 쓰지 말라고 하며 빵을 바닥에 던졌던 일화를 말했다. 바닥에 터져버린 빵을 치우며 무척 슬펐다고 한다. 단 하나의 사연이었지만 관람객이 얼마나 상처를 받으며 자랐을지 짐작이 갔다. 돈을 절약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기왕 사 온 빵을 기분 좋게 자녀에게 먹도록 해 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녀가 먹고 싶었던 빵을 던져서 결국 먹지 못하는 것이 더 비경제적이었다.

지금은 괜찮은지 조심스레 여쭈었다. 아버지께 용돈을 드리거나 선물을 드리는 등 타인의 이목을 생각해 도리는 다하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고 답했다.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정이 없어서였다. 차라리 만나지 않고 살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수없이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이제 기댈 곳이 없어 찾아뵙는데 어린 시절의 상처가 생각나 몹시 고통스럽다고 전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아버지도 후회할 거라 믿었으나 결국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몇 달 전 아버지의 환갑을 맞아 떡과 과일을 사 갔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먹지도 않을 것을 왜 샀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자녀가 먹고 싶어서 산 것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아버지 환갑기념으로 산 것이라 오해는 풀렸지만, 설령 먹고 싶어서 산 것이라 할지라도 성인이 된 자녀에게 화를 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버지와 잘 지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지만 변치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그 마음들은 한순간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애처로웠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린 시절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트라우마로 남는다. 억압된 상처들은 인생 전반을 흔들어 놓는다. 아버지로부터 상처받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와 자녀 관계도 일종의 끊을 수 있는 인간관계라면 차라리 어떨까 생각해 본다. 나 역시 자녀를 키우며 서로의 입장은 극명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랐는데 관람객은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했다. 관계회복은 나의 외람된 생각이었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는 겪어보지 않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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