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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멀게만 느껴지는 지인이 있다. 반듯하고 배울 점이 많아 자주 연락하며 지내지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도 잘 하지 않지만 타인의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독이 되어 돌아온다는 말을 종종 했다. 한편으로는 본인도 답답한 눈치였다. 필자는 그 친구에게 그림을 그려보기를 권유했다. 그림에 심취하다 보면 잡념이 없어질 뿐 아니라 일종의 수다와 같은 감정적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드러내기 꺼리는 친구는 그림보다 컬러링 북을 선택해 도전했다. 아름다운 색으로 꾸며지는 그림들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완성을 향해가는 컬러링 북의 그림은 다소 채도가 낮으나 그녀를 닮은 차분한 느낌도 들었다. 최근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하고 있어 전화나 메신저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집에서 할 일이 마땅히 없어 컬러링 북을 하노라니 외출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사라지고 마음은 부유해진 기분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는 긴 시간 끝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기에 온 마음 다해 응원을 전했다.

이후 가끔 그림과 색채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다가 이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본인의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떠한 트라우마인지 곧 이야기 해 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반듯하게 자라온 그녀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이 없이 자라왔다고 했다. 성인이 된 이후 원하는 공부를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사회로 나와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무직,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던 어느 날 부모님께서 돈을 보관해 주겠다고 하여 몇 년 동안 일을 하며 돈을 맡겼다고 했다.

시간이 지난 후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부모님께 지금껏 모아둔 돈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돈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후 사람을 절대 믿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는 말을 어렵사리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님에게 믿음이 깨져 버렸으니 그 괴로움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다.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어떤 말을 해 줘야 할지 몰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필자에게 그녀는 다행스러운 이야기를 했다.

차라리 젊은 시절에 이 일을 겪었기 때문에 본인이 더 강인해지고 성숙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한 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잘 살아갈 그녀였지만 타인을 믿지 않고 객관적인 상황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고 먼발치를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상황 판단능력이 항상 좋았던 그녀의 이유를 듣고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러나 컬러링 북을 색칠하며 감정을 쌓아둔 조금씩 풀어내며 자신의 괴로움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며 더 이상 경직되게 살지 않겠노라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색을 칠하는 단순한 행위는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심리상태를 이완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가 괴로움을 잊을 수 있고 '색칠'이라는 성찰을 통해 지난날의 좋지 않은 기억들을 털어버리는 계기가 되었고 감정을 감추기 보다 드러내는 삶을 선택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흔히들 괴로움은 끝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가까운 이들로부터 받았던 상처는 긴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와 같다. 누구나 정도가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괴로움은 갖고 살아간다. 마음의 짐이자 상처인 괴로움을 끝없이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치료하지 않아 곪아가고 있는 상처와도 같다. 괴로움이란 끝이 없는 것이 아닌 그 끝은 바로 행복이라는 결말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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