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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선열들의 숨소리를 듣는다- 옥천 곽중규 선생

윤봉길 의사 '훙커우 공원 의거'의 숨은 조력자
대한민국임시정부서 독립운동 펼쳐
윤 의사에게 상해 지리 알려준 장본인

  • 웹출고시간2019.09.01 16:11:56
  • 최종수정2019.09.01 16:13:00
[충북일보 강준식기자] "윤봉길에게 상해 지리를 알려주거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에 숨은 공로자가 있다. 옥천 출신 곽중규(1891~1950·사진) 선생이다.

곽중규 선생은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옥천 이원면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해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대전형무소에서 3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1921년 9월 미국인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가던 중 중국 상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이듬해인 1922년 3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비서로 취임했다. 이후 비서장으로 승진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4년 5월 상해교민회에서 설립한 인성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며 교포 자녀들에게 민족사상을 교육하기도 했다.

1925년 3월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돼 나창헌·최석순·강창제 등과 함께 임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의 탄핵안을 제출했다.

1927년 10월 상해 교민단의사회 선거에서 상해교민회 단장으로 선출된 뒤부터는 상해 교민들의 생활안정 등을 위해 활동하며 3·1절 기념식 등을 개최했다.

상해교민회 단장을 사임한 1929년 상해 프랑스 조계로 이사한 곽 선생은 성광사진관을 개업해 독립운동을 위한 연락장소로 제공했다.

1931년 9월부터 윤봉길 의사를 사진관에 은신하게 한 뒤 동생 곽중선(1907~1935)을 통해 윤 의사에게 상해 지리와 풍습을 알려주고 거사를 대비하도록 했다. 윤 의사는 곽중규 형제의 도움을 받아 이듬해 훙커우 공원 의거를 실행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선출된 곽 선생은 1933년 4월 상해로 돌아와 한족유일독립당촉성회 간부로 선출됐다.

같은 해 밀정의 제보로 체포돼 신의주형무소에서 2년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곽 선생은 1935년 5월 가출옥한 뒤 동생 곽중혁의 집에서 머물면서 상해에 남아있던 가족들과 비밀연락을 취하던 중 곽중선이 괴한의 총격으로 순국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하지만, 그는 신변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1938년 석가장으로 이주해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정부는 1992년 곽중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충북남부보훈지청은 곽 선생을 '9월 우리고장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 강준식기자 good1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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