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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임진왜란 첫 승전고 울린 '청주성 전투'

'청주성 탈환' 조헌 선생
임진왜란때 의병 일으켜 선봉
금산전투·차령전투서도 유공
옥천선 교육·문화사업 추진도

  • 웹출고시간2019.02.20 20:34:10
  • 최종수정2019.02.20 20:34:10

조헌선생 재실인 영모재

[충북일보] 청주 한봉수, 충주 조덕공, 제천 류인석, 영동 박몽열, 괴산 김시약 선생. 충북이 의병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중 중봉(重峯) 조헌(趙憲, 1544~1592) 선생을 빼놓을 순 없다. 임진왜란 때 처음 의병을 일으켜 육전 최초 승전고를 울린 입지적인 인물이다.

조헌 선생은 경기도 김포 감정리에서 아버지 응지와 어머니 용성 차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각종 학술자료를 보면 조헌 선생은 24세에 과거에 급제했고, 왜적의 침입을 예견하고 대비할 방책을 거듭 상소했다.

이 예측대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호남의 고경명·김천일, 영남의 곽재우·정인홍과 함께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이 때 옥천, 청주, 공주, 홍성에서 모집한 의병은 1천6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의병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 정예부대와 대적하기에는 사실상 힘겨웠다. 조헌 선생은 의병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치는 등 군사훈련을 지휘해 전투에 대비했다.

왜군과 맞서 싸운 조헌 선생 전투는 '차령전투' '청주성전투' '금산전투'가 꼽힌다. 전투의 세세한 내용은 옥천군이 주최한 학술세미나 '중봉 조헌의 생애와 업적(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에 기록돼 있다.

이 중 청주성전투는 임진왜란 육지전 중 최초로 승리한 전투이면서 초기 의병이 거둔 주요 성과로 평가된다.

조헌 선생 시비

이 전투에는 조헌 선생의 승병 1천 명, 청주 의병 1천 명, 관군 500명이 참전했다.

조헌 선생은 1592년 7월 29일 충남 계룡사 갑사에서 나라의 위급을 막고자 궐기한 영규대사 승변군과 합류했다

당시 박춘무의 청주 의병도 청주성을 향해 진격하면서 자연스럽게 전투에 합류하게 됐다.

이로써 연기현에 주둔한 관군과 안심사에 집결한 영규대사가 이끈 승병, 청주 의병 간 합군이 이뤄졌다. 조헌 선생이 이 합군을 직접 지휘했다.

조헌과 승병부대는 청주성 서문쪽을 공격했고, 청주 의병은 남문을 공격했다.

같은 해 8월 1일 전투는 종일 계속됐고, 기상 악화로 관의병은 일단 후퇴해 상황을 지켜봤다. 그런데 싸울 의지를 잃은 왜군 스스로 후퇴함으로 관의병들은 피를 흘리지 않고도 청주성을 되찾게 됐다. 1592년 6월 23일 왜군에게 함락된 청주성이 8월 1일 탈환된 것이다.

청주성 탈환 공로로 중봉 조헌 선생에게는 종4품의 봉상시첨정의 벼슬이 내려졌다.

청주시에서는 청주성탈환을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9월 중앙공원에서 '청주성읍성잔치'를 개최하고 있다.

조헌 선생은 금산전투와 차령전투에서도 공을 올린다. 전문가들은 조선 선생의 이 같은 의병활동을 향토방위의 소극적 전투가 아닌 국가수복이라는 거국적 차원의 전투로 평가한다.

또 임진왜란 초기 왜군의 세력을 꺾는데 크게 기여했고, 곡창지대인 호남과 호서지방을 안전하게 보존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하는 기반을 제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조헌 선생은 1592년 8월 18일 금산 연곤평 벌판에서 벌어진 금산전투에서 의병 700명과 함께 순절한다.

위험을 무릅쓴 공격을 말리는 제안도 있었으나 조헌 선생은 "한번의 죽음이 있을 뿐 의(義)에 부끄럼이 없게 하라"고 의병을 독려한 뒤 분전했다. 당시 전투에서 한 명도 후퇴하지 않고 왜군과 장렬히 싸워 모두 전사했다.

조헌 선생 묘소

조헌 선생의 묘소(충북도 기념물 14호)는 옥천군 안남면 도동리에 있다. 조헌 선생은 1584년 옥천군 안읍 밤티의 산골에 은거하며 '후율정사(後栗精舍)'를 짓고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 연구에 정진한 연고 때문으로 보인다.

옥천군에서는 의병장 조헌 선생의 업적을 기려 교육·문화사업을 추진한다.

조헌 선생 발자취를 쫓는 'Your 옥천, Your 문화재' 프로그램은 유적지 답사, 시민강좌, 의병체험행사 등으로 진행된다.

옥천에는 조헌 선생 묘소를 비롯해 그가 후학을 가르치던 서당인 이지당(충북도 유형문화재 42호), 신도비(138호) 등이 있다.

/ 박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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