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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피천득 선생이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말한 5월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리게만 느껴지던 나무 잎새들이 봄비를 맞고 난 후 힘찬 생명력을 내뿜고 있다.

남쪽의 산을 다녀왔다. 차창에 날아드는 하얀 솜털이 지천으로 흩날렸다. 여행 내내 따라다니던 하얀 솜뭉치는 이맘때마다 극성이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기겁하며 피해 다니던 것들이다. 이것은 꽃가루가 아닌 씨앗 뭉치라고 한다.

버드나무나 은사시나무, 이태리포플러의 꽃가루들이 암술과 만나 꽃가루받이를 끝낸 씨앗들이다. 자기 종족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솜털을 붙여 바람을 타고 여행 중이라고 하니 나무들의 번식 활동이라고 여기기엔 영리하고 낭만적이다.

봄날 들판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키 작은 노란색의 민들레꽃이다. 이 꽃들도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둥근 모양의 홀씨를 만든다. 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날아다니는 공 모양 솜털 씨앗은 100리까지 날아간다고 한다. 내가 여행 도중에 만난 민들레 씨앗들도 바람을 날아 수십㎞를 함께 비행 중이었던 셈이다.

5월의 길바닥이나 물웅덩이, 차창을 노랗게 덮고 있는 송홧가루는 또 어떤가. 소나무의 꽃가루는 암꽃을 만나기 위해 5~10일 동안 하늘을 헤매며 날아다닌다. 수꽃의 꽃가루가 암꽃에 닿아야 꽃가루받이가 되는데 근친결혼을 막기 위해 빨간 암꽃이 수꽃 위의 가지에 달린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꽃가루가 암술에 묻으면 성장을 멈춰버리기도 한다고 하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길 위에서 사방천지 꽃가루와 솜털 씨앗 뭉치들을 마주친다. 필연을 만나기 위해 종횡무진인 나무와 꽃들의 강한 생명 의지가 신비롭다. 이렇듯 모든 생명체는 건강하고 많은 후손을 남기기 위해 치열한 자기 분투를 마다하지 않는다. 진화도 번식을 통해 완성된다.

하지만 이런 본능의 자연법칙에 맞서는 유일한 종(種)이 있다. 우리가 호모사피엔스라고 부르는 현대 인류이다.

"부유한 선진국일수록 자식은 악성 소비재이다. 가난한 후진국에선 자식이 훌륭한 생산재다"라고 말한 모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발언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일면 이해가 된다. 후진국에서 자식은 노후를 보장하는 보험이기에 되도록 출산을 늘린다. 선진국에서는 자녀 양육과 교육투자에서 회수가 어렵다. 선진국이 될수록 결혼과 출산을 피하는 이유를 분석한 경제학자다운 말이지만 자식도 경제적 가치로 따지는 현실이 되었다.

자연법칙을 거슬려야 하는 현대 인류의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이지만 그래도 5월은 누구나 가슴 설레게 하는 계절이다. 아직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이름을 불러주면 그 누군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시간이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붉은 여명 속으로 장미꽃잎을 흩뿌리는 달이다. 화려한 색과 달콤한 향기의 꽃들이 생식의 절정으로 만발하고, 민들레조차 바람에 자기 씨앗을 실어 사랑을 갈구하는 때이다.

바람에 실려 날아다니던 민들레의 씨앗이 한 줌의 흙에도 자리 잡지 못하고, 소나무 꽃가루가 인연이 닿은 암꽃을 만나지 못한 채 일생을 다한다고 한들, 그 몸짓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바람에 휘날리던 부드러운 솜털들은 얼마나 자유롭고 사랑스럽고 생명력이 넘실대는가.

이 5월에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듯한 '청신한 얼굴'들이 발갛게 낯빛을 붉히는 더 많은 만남이 이루어지길 난 바란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떤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절처럼, 세상살이에 한 번도 떨며 약동하지 않고서는 꽃을 피울 수 없음을, 아직도 머뭇거리는 '청신한 얼굴'들이 되새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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