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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지나간 시간들이 소박하기만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1월 1일 새벽에, 아직은 깜깜한 창밖을 내다보면서 난 이 한마디만 생각했다.

해가 바뀌어도 달력을 걸기 위해, 난 이제 못질을 하지 않는다. 1년 치 달력이 60번쯤 바뀌고 나니 더는 다급하지 않다. 노경(老境)이 되니 시간의 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껏 시간을 알려고 했고, 잡으려 했고, 채우려 했다. 내게는 사는 내내 시간이 큰 숙제였다. 나의 60개의 달력마다 번민과, 욕망과, 허기로 얼룩진 시간의 때가 그 얼마일 것인가.

요즘 들어 아내의 식당 수저통에 쌓인 숟가락을 닦을 때마다, 난 이 수저들이 들락거렸을 수많은 입들의 사연과 치욕, 자그마한 위안들과 생의 안간힘을 떠올린다. 윤기 나게 문지르면서, 난 이 숟가락을 드는 사람들 모두가 배부르고, 편안하고, 행복하고, 더 좋아지고, 거룩해지기를 바랐다.

밥숟가락이 십자가보다 성스럽지 못할 이유가 없으리라. 모든 숟가락질마다 희로애락의 시간들이 배지 않은 순간들이 있겠는가. 밥을 벌기 위해 우리의 시간들은 얼마나 고되었던가.

시간의 속살들을 발라내니 삶의 민낯이 조금은 보인다. 생이란 먹고 사는 일이요, 사랑하는 일이요, 의미와 재미를 만드는 일이다. 이른바 생존, 생식, 생성이다. 하찮고 무의미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실은 우리 존재의 본질이었다. 일마치고 귀가하여 손 씻고, 함께 밥 먹고, 하루의 행적을 서로 나누고, 편히 잠드는 것이 삶의 정수였다.

그게 다였다. 나머지는 사족이요, 헛된 시도였다. 나는 그 무엇을 위해 그토록 전전긍긍했으며 무수한 밤을 불면으로 지새웠는지 반문했다.

난 그렇게 소박함을 생각하며 새해를 맞이했다. 시간에도 더는 연연해하지 않았다. 평상심이 경천위지(經天緯地)였음을, 평생의 공부가 이것을 깨닫기 위함이었다. 삶은 왈가왈부할 대상이 아니었다. 생의 진경(眞境)이 이곳에 있음을 깨우치기 위해, 그 먼 여행길을 떠나 수많은 풍경들을 만났고, 우회했고, 되돌아 왔다. 결국은 자신의 존재이유가 자신 속에 있듯이.

삶에 정답이 없음을 알았기에 난 밤마다 뒤척이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이유가 없기에 다만 사랑할 뿐이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바람만 느낄 것이며, 이제 바람에 대해 따져 묻지 않으리라. 햇살의 반짝임에 눈부셔하고, 나뭇잎의 산들거림을 그저 경이롭게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난 오염된 말로 세상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며 생명의 언어만 말할 것이다.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선명한 시간, '소박한 시간'이 돌올하게 떠오른 새해 벽두는 간결해서 홀가분했다. 그야말로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맑았다. 불가에서 말하는 삼매와 입정(入定)이 이러하리라. 실로 이러한 기분은 생전 처음으로 맛본 충만감이었다. 이 낯선 시간과의 만남은 내게 얼마나 큰 공부인가.

어느 시인의 말대로, 소금이 바다의 상처이듯이, 혹은 평생 물을 그리워한 바다의 유언으로 소금이 오듯이, 누구나 아픔과 그리움의 뒤안길로 소금처럼 소박한 시간이 올 것이다. 나는 귀가 순해지는 나이가 되어서야 이 흰 눈같이 소박한 시간을 발견했다. 순백의 소박한 시간이 새기는 삶과 사랑의 무늬는 어떤 형상으로 그려질지 난 무척이나 궁금하다.

광풍제월(光風霽月), 햇빛이 환한 아침녘의 한줄기 바람에 행복해 하며, 비 그친 후에 드러난 둥근 달도 더 자주 바라보면서, 난 더 투명해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아무 회한 없을 산뜻하고 충일한 시간 속에서, 난 해석이 불필요한 가지런한 생의 순리를 온몸으로 따르며, 끝내 지극한 사랑의 무늬를 올올하게 새기는 무궁한 몸짓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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