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26.0℃
  • 구름많음강릉 28.0℃
  • 구름많음서울 24.5℃
  • 맑음충주 25.4℃
  • 맑음서산 21.4℃
  • 맑음청주 25.4℃
  • 맑음대전 25.8℃
  • 맑음추풍령 26.0℃
  • 맑음대구 26.1℃
  • 맑음울산 22.5℃
  • 맑음광주 25.0℃
  • 구름조금부산 21.0℃
  • 맑음고창 25.3℃
  • 맑음홍성(예) 23.7℃
  • 구름조금제주 18.9℃
  • 구름조금고산 18.1℃
  • 구름조금강화 22.5℃
  • 맑음제천 23.9℃
  • 맑음보은 25.4℃
  • 맑음천안 24.9℃
  • 맑음보령 22.5℃
  • 맑음부여 24.9℃
  • 맑음금산 26.8℃
  • 맑음강진군 22.8℃
  • 맑음경주시 28.3℃
  • 맑음거제 21.0℃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7.07.18 14:07:50
  • 최종수정2017.07.18 14:07:50

장정환

에세이스트

세속을 떠난다. 속된 세상을 등지고 홀연히 길을 나설 수 있는 곳, 바랑하나 달랑 지고 구름 따라 물 따라 무작정 떠나는 길, 어떤 막힘이나 집착도 없이 떠나는 운수행각(雲水行脚)의 길, 난 그 길로 들어선다.

세상과 이별한다는 속리(俗離), 그 단어만으로도 이 길은 철학과 문학의 풍취가 있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았건만(道不遠人)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人遠道),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았건만(山非離俗) 속세가 산을 떠난 것이다(俗離山)."

이 시를 남겨야 했던 통일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의 연유를 잠시 헤아린다.

법주사에서 조금 걷다보니 고목의 짙푸른 그늘아래 포말로 부서지는 계곡물과 마주친다. 높고 깊은 봉우리에서 내달리는 물줄기는 조신하지 않고 소란스레 들떠있다.

오랫동안 목말랐던 대지는 어젯밤 품었던 거친 장맛비가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온 정인(情人)인양 달뜬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아직껏 길과 나무는 촉촉하게 젖어있고 대기는 후끈하다.

이 길은 작년부터 '세조길'로 불린다.

후세의 사람들이 정2품의 벼슬을 받은 소나무까지 기리게 한 세조이지만, 겨우 12살의 어린조카를 죽게 한 비정함에 '참회길'로도 부르는 이 길이 무람하다.

늙어서 이 길을 걸으며 참회했다고 하나 어린 단종이 느꼈을 두려움과 비통함에 어찌 견줄 수 있을까 싶다.

단종이 갇혀있던 작은 섬, 영월 청령포 솔숲은 깊었고 강가의 백사장은 고적했다. 그 곳을 걷는 내내 쓸쓸했던 기억과 겹쳐지니 내겐 그 참회가 부질없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고 강물이 불어 청령포가 물에 잠길 때 어린 단종이 겪어야 했던 생의 모진 운명이 내겐 버거웠다.

미움과 가책도 없는 삶은 불가능한 것일까· 서로에게 죽음과 절망과 슬픔을 겨누지 않고, 생생한 삶의 긍정을, 희망을, 기쁨을 안기는 삶은 왜 지속되지 않을까.

두서없는 나그네의 상념으로 한 시간 남짓 걷다보니 세심정이다. 세심(洗心), 마음을 깨끗하게 씻는다 해도 상흔이 사라질 리 없다. 세조가 참회하며 걷던 길엔 영속적인 시간이 흐른다. 이 길은 세조의 유한한 생이 상처로 남았지만 생존중인 내게도 유한하다. 반환점이다.

이 지점은 추억이 가물거리고 미래는 기약 없는 지점, 세속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지점, 불가역의 생존영토로 돌아서야할 지점, 속리의 공간과 시간이 이쯤에서 멈췄으면 하는 지점. 상흔(傷痕)이 남더라도 세심(洗心)이 간절해지는 지점이다.

나는 언제나 생이라는 길 위에, 또 어느 순간 반환점에 있었다. 그 길 또한 매번 참회의 길이었다. 그래서 이 길이 아프다. 세조가 아프고 어린 단종이 아프다. 12살의 어린 단종이 사약을 받을 때 12살의 최치원은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났고 난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때부터 얼마나 멀리 걸었던가. 정작 중요한 것은 참회 없이 사는 것, 이 세상의 진리가 그럴진대 세상살이는 후회와 회한이 그치질 않는다.

착시든 실수든 정당하든 모든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난 왜 내 곁의 동행자를 더 완전하게 채우지 못했던가· 건강하게, 기쁘게, 즐겁게, 신나게, 행복하게, 더 성장하고 성숙되도록, 그래서 이 삶이 꽉 차게 재미있고 충족되게, 더 의미 있는 삶이 되도록 못 만든 것일까·

최치원과 세조를 기억하는 나무그늘 아래로 난 터벅이며 내려간다. 도보로 왕복 2시간, 참회하는 '세조길'은 이제 갈무리된다.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언제쯤 나의 길(道)이 완성될 것인지 세조길이 묻는다. 속리를 벗어나니 곧 바로 세속, 속래(俗來)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기술을 넘어 협력으로" 성장 네트워크 구축하는 충북이노비즈

[충북일보] "충북 이노비즈 기업들이 연결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은 지역 내 탄탄한 경제 기반으로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30일 취임한 안준식(55) 신임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장은 회원사와 '함께 성장하는 기술혁신 플랫폼'으로서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 역할을 강화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안 신임 회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해야할 부분은 이노비즈기업 협회와 회원사 위상 강화"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대외협력위원회(위원장 노근호 전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경영혁신위원회(위원장 이미연 ㈜유진테크놀로지 대표) △회원사 협력위원회(위원장 한연수 ㈜마루온 대표) △봉사위원회(위원장 함경태 ㈜미래이앤지 대표) △창립 20주년 추진위원회(위원장 신의수 ㈜제이비컴 대표)로 5개 위원회를 구성했다. 안준식 회장은 도내 회원사들이 가진 특징으로 빠른 적응력과 협력네트워크를 꼽았다. 그는 "충북 이노비즈 기업은 제조 기반 기술력과 신사업으로의 적응력이 뛰어나다. 첨단산업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다수 분포해 있고, 산업단지 중심 클러스터화도 잘 이뤄져 있어 협력 네트워크도